한국 현대사를 통해 가장 극적인 하루를 꼽는다면 단연 1979년 10월 26일. 그날일 것입니다. 세계 3대 독재자라 불리웠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냈던 한 인물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을 떠나 한국 현대사의 방향을 통째로 틀어놓은 사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9살.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르지만) 3학년 이었습니다. 박통의 죽음은 어린 나에게 신의 죽음과 맞먹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고 세상을 살다보면서 박통에 대한 세뇌는 지독한 미움으로 변했습니다. 그가 만들어 낸 지금의 대한민국에 언제나 감사하고 살지만 친일의 원죄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박통을 미워하게 된 것은 그를 이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펼치려는 인간들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 나의 신이었던 영웅이 어느새 나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갔었기에 그의 죽음의 의미, 혹은 그의 죽음에 깔려있는 그 시대의 국제관계는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이 소설 [10.26]을 읽기 전 까지는 말이죠. 이 소설은 이미 10년전에 발표되었던 [한반도]의 내용을 좀 더 다듬어서 내 놓은 소설입니다. 신작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한반도]를 읽었던 독자들은 의구심을 가지게 할 소설이죠.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반도]를 읽지 않았던 나에게는 꽤나 즐거움을 안겨 준 책이었습니다. 대학 때 반미를 부르짖던 선배들에 의해 어렴풋이 들었던 박통의 죽음에 숨겨진 미국의 추악함, 박통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들과 자주국방의 꿈, 박통의 죽음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조국과 민족을 배반했던 현대사의 아픔들. 한번 쯤 들어 보았지만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려 했던 역사의 무게가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역사, 내 아들이 자랐을 때 아버지는 그 때 무얼하고 계셨나요?라고 물을지도 모르는 역사. 그 때는 겨우 9살에 지나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합리화하며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민족의 입장에서 영웅일 수 밖에 없었던 인간 박정희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가고 있는 미국의 군산복합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두려운 진실입니다. 소설에서 김진명 작가가 예언했던 대로 남북정상회담은 이루어졌건만 작가가 바라던 민족의 화합이나 통일은 아직도 요원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도, 김대중 대통령이 평생의 숙원으로 품었었고 끝끝내 이루어냈던 남북정상회담을 노벨상을 타기 위해 국고를 북한에 갖다바친 파렴치한 행동으로 몰아가는 것도 어쩌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들의 현재진행형 음모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이루어진 정상회담은 어쩔 수 없으니 그 성과를 최소화하고 회담 자체를 추악하게 만들려는 음모. 과연 나만의 지난친 억측일까요? 너무도 멀리가버린 비약일까요? 냉엄한 국사사회에서 영원한 우방이 없다는 것은 어린애들도 알고 있는 진실이죠. 그러나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과연 우리가 스스로의 자긍심을 지키며 살고 있는 걸까요? 미국의 저급하고 선정적인 문화에 지배를 당하고 굴욕적인 요구들도 다 들어주며 사는 것. 한번도 반미를 주장한 적 없는 나이지만 작금의 현실은 가슴이 답답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질문이 어쩌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한다면 우리는 누구와 싸워야 하나요? 김진명 작가의 특기인 지독한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는 여전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지독함이 거북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나도 서서히 민족과 국가에 대한 의식이 생기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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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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