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 <개인주의자 선언>으로 명성을 얻은 문유석 판사가 쓴 법정 소설. 주인공은 책 제목과 동명의 별명을 지닌 초임판사 박차오름, 그의 동료 판사인 임바른, 그리고 이 둘이 속한 서울지법 민사합의44부의 한세상 부장판사. 그리고 주요 내용은 이들이 재판하는 사건과 그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서울지법 민사합의44부의 논의.

현직 판사가 쓴 법정 소설이니만큼 사법부에 대해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전관예우에 대한 일반 시민들과 판사들의 서로 다른 인식의 원인과 그 해결 과정이 그 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이 책은 대학교 교양과목인 법학개론에서 부교재로 써도 될만큼 훌륭하다.

전공은 경영학과 금융공학이지만, 나는 학부생 시절 교양과목인 법학개론을 수강했다. 그 당시 주교재는 모교 법학과 교수들이 쓴 <현대 시민생활과 법>이라는 책이었고, 부교재는 서울대학교 법학과 최종고 교수가 쓴 <법학통론>과 <케이스로 본 법학통론>이었다. 그러나 이 책들의 내용은 법학 전공자가 아닌 평범한 학생인 내가 보기에 너무 난해하고 어려웠다. 그렇기에 저 딱딱한 법률용어로 가득한 책보다, 일상의 언어로 설명한 이 책이 케이스 스터디 및 시민의 교양으로서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같은 일반인의 반발도 적을 것이고, 일반 시민들이 법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여지도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에필로그에서 문유석 판사가 쓴 글을 인용한다.

"제목에서 뭔가 화끈하게 정의를 실현하는 판사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속았다고 하실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20년 정도 판사로 일하면서 든 생각은 법정이든 세상이든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이 <미스 함무라비>에서도 재판부가 화끈하게 결론을 내린 것은 하나도 없다. 항상 그런 식이다. 판사는 늘 벽에 부딪힌다. 햄릿처럼 갈등하고 고민한다. 정작 해결의 실마리를 쥐는 것은 시민들이다. '1번 배심원' 노인처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들이다. 처음에 가장 생각이 달랐던 사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판사들이 한 일은 없다. 사회가 실질적으로 바뀌는 것 역시 그런 방식이 아닐까. 법정 저 높은 곳에서 심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판사들이 실제로는 무력감을 느끼며 정답이 없는 안갯속을 헤쳐나간다. 판사는 도로, 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일 뿐이다. 주어진 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기능한다. 그 법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결국 시민들이 쥐고 있다. 권리 위에 잠자지 말자. 주체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결국 법은 절대적 권위를 갖는 지고의 가치체계가 아니라 시민들이 그들의 삶을 더 원활하게 살아가기 위해 만든 약속인 것이다.

더불어, 여기서 밝히면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에는 주인공 셋의 인연이 나온다. 게다가 그 인연이 밝혀지기 전 에피소드 둘에서는 주인공들 간, 그리고 주인공들과 사회와의 갈등이 고조된다. 고조된 갈등이 해소되고 주인공들 간 인연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울음과 웃음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정말 대단한 필력과 좋은 내용까지 지닌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