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한 마을
현영강 지음 / 부크크(bookk)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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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장벽 너머에는 진짜 행복한 삶이 있는 걸까?

요즘 뉴스를 보고 있자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경제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정치는 혼란 그 자체다. 출산율은 국가 자체가 소멸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뿐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여기저기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마약, 기후 문제 등 인류가 해결하기 버거운 숙제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인류의 생존이 걸려 있는 이런 거대한 문제들 앞에서도 세계는 힘을 합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분열되고 엉망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이러다 정말 세상이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때면 긍정적 미래를 그리는 유토피아보다는 암울한 미래인 디스토피아적 세상을 상상하게 된다. 이 책 <반반한 마을>은 바로 그런 디스토피아적 세상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행복한 삶이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이 소설 <반반한 마을> '마을'이라는 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을'은 계급이 없이 모두가 평등한 곳이다. 화폐도 없이 '약속의 날'에 모여 물물교환으로 살아가는 극도의 공평함을 추구하는 곳이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철저한 계급 사회인 '시티'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다. '시티' '마을'과는 반대로 철저한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다. 시티의 사람들은 평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이런 사회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떨어져 나와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더욱더 살기 좋고 이상적이어야 할 '마을'은 그다지 풍요롭지 못하다. 항상 모든 것이 부족하고 가난한 동네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곳이어야 할 '시티'는 모든 것이 풍족하고 부유하다. 물론 문제는 시티의 모든 사람이 그 부와 풍요로움을 동등하게 누리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시티의 사람들은 안쪽과 바깥쪽, 중심 구역과 외각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장벽으로 나누어진 저 너머와 그 밖에 버려진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을'의 가난보다는 오히려 '시티'의 정의롭지 못한 풍요로움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이 책 <반반한 마을>은 이렇게 대조적인 이념과 체제로 살아가는 두 곳 '마을' '시티'의 이야기다.

포는 그것이 시티에서 빵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포는 집어 든 빵을 단숨에 입안 가득 베어 물었다.

"··· 우으."

씹음과 동시에 안으로 퍼지는 고소한 풍미에 포는 미묘한 콧소리로 그를 반기며 빵을 씹어 나갔다. 그리고 맛에 익숙해지는 가운데, 식도가 밀가루에 막혀 갈 무렵, 포는 불쾌감이 느껴졌다. 퓨티가 수풀로 가득한 마을에서 어떻게 이러한 음식을 구할 수 있었는지서부터, 음흉한 마토의 아래에서 하수인처럼 일하는 그녀의 모습까지가 머릿속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포는 베어 물었던 빵을 입에서 떼어 내어 자신의 이빨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반반한 마을> 중에서

이 소설 <반반한 마을>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방대한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시티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가드, 계급이 없는 평등한 마을이지만 여러 가지 특혜와 우대를 받는 마을의 수호신 지킴이, 그리고 선망의 대상이었던 지킴이가 사실은 전혀 다른 거짓된 존재였다는 진실과 같은 이야기들이 짜임새 있게 펼쳐져 나가며, 이야기의 흥미를 고조시킨다. 처녀작임에도 이 정도의 세계관을 구성했다는 것은 작가의 필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탄탄한 구성이 이야기에 재미를 더한다. 읽는 맛이 있는 소설이다.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마을과 시티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의 메타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평등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빈곤과 거짓만 남은 마을에서도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풍요롭고 행복한 세상인 듯한 시티에서도 불만과 반대의 목소리를 커져간다. 마치 인류사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서로 경쟁하지만 완전한 이상향인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마을과 시티도 그러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서 많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개선과 발전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한 거야."

"오해는 말게, 피크. 내 생애 그런 착한 척을 행할 줄은 나 역시도 몰랐으니까."

"그저 행복하면 되는 사람들이 아닌가. 자네가 모두 불행하게 만들었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어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말이야."

피크는 여전히 고개를 든 채로 입을 벙긋거렸다. 적잖이 아니꼽다는 자세였다. 말투 또한 매한가지였다.

"그 행복이 거짓에 투영된 것이라고 괜찮단 소리로 들리는데."

디케이는 높이 올라간 피크의 눈을 보며 말했다.

<반반한 마을> 중에서

이 소설 <반반한 마을>은 조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곳곳에서 오마주 하고 있다.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황무지에서 살아가는 야만인 중 하나인 존의 이야기라든지,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약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시티 사람들의 이야기. 더 나아가서 <반반한 마을>의 등장인물들이 <멋진 신세계>로 추정되는 한 소설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인용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 전체에서 멋진 신세계와 같은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흐른다.

이 소설 <반반한 마을>은 이렇게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을 그리고 있지만, 반대로 유토피아를 갈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 유토피아를 실현하기는 힘든 일이기에 조금씩 조금씩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을에서 온 두 여인이 시티의 사람들, 특히 소년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결국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만나고 교류하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저 우리는 구역에 머무는 다수의 인간보다 한 발이 빠를 뿐이죠. 그렇지만 평범한 한 발이 불러올 결과는 창대할 것입니다. 우리가 쌓아 온 노력과 용기는 결단코 헛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름은 후대의 인간들에게 지겹도록 거론될 것입니다. 속박을 뿌리치고, 사회의 부당함과 정면으로 맞댄 사람들, 틀 속에 갇혀 썩어 가기만 하는 삶을 거부한 사람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떻게든 장벽을 올라야 합니다. 장벽을 올라 그 너머를 봐야만 합니다. 오릅시다. 그리고 신세계를 품에 안읍시다.

<반반한 마을> 중에서

이렇게 <반반한 마을>은 디스토피아 적 세상을 그린 소설이지만 그렇다고 이야기의 분위기가 너무 어둡거나 무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계관 구성이 탄탄해서 이야기 자체에 빨려 들어가서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조지 오엘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더욱더 취향에 맞게 읽을 실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다. 판타지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상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갖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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