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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 ㅣ 새움 세계문학
알퐁스 도데 지음, 김명섭 옮김 / 새움 / 2018년 3월
평점 :

새까만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을 떠올리면 함께 생각나곤 하는 사람이, 아니 장면이 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소용돌이 치는 별들의 모습과 또는 도데의 소설 속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함께 바라보며 이야기 하고 있는 양치기와 아가씨의 모습. 둘다 아름답고 멋진 장면들이다. 별이 가지는 이미지와 상징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또 가장 잘 묘사한 두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고흐가 그림을 그리는데 큰 영감을 준 것이 알퐁스 도데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어째서 도데의 소설을 읽으며 자꾸만 고흐의 그림들이 생각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이 되었다. 이처럼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줄 정도로 도데의 소설이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란 생각엔 항상 변함이 없었다. 어린시절 읽었던 소설 별에서 느꼈던 따뜻했던 기억을 어른이 된 지금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에겐 교과서에서도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니 한국사람들이 사랑하는 소설이라는 것에도 이견이 없을만한 작품이기에, 어른이 되어 점점 잃어가는 순수함과 감수성을 다시금 살아나게 해 줄 수 있을 도데의 소설과의 재회가 기대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지평선엔 알피유산맥의 삐쭉빼쭉하고 선명한 봉우리들... 고요하고... 겨우, 저 멀리엔, 피리 소리, 라벤더꽃 사이 도요새 한 마리, 길 가는 당나귀의 방울 소리, 생생한 빛으로만 아름다운 이 모든 프로방스의 풍경들.


사실 우리가 ‘별’로 알고 있는 소설이 원작 그대로 해석하면 ‘별들’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단편소설로만 알고 있었던 '별들'이 24편의 연작소설중의 한편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꼭 전체 작품들을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체 작품이 한 책으로 다함께 번역된 적은 없었다고 하니 이 책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이 새삼 느껴지기도 했다. 도데의 대표작은 ‘별들’과 ‘마지막 수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프랑스 작가이다. 그는 빛과 색채의 고장이라 불리는 프로방스 출신으로 그의 작품 곳곳엔 프로방스 특유의 풍광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소설은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각각의 단편들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의 풍차 방앗간에 정착한 소설 속 도데는 시골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이야기들을 통해 소시민들의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담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전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업화에 밀려 자신의 풍차 방앗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코르니유 영감,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지 못한 채 그리워하다 결국 자살하는 청년, 일자리를 잃고 시력도 잃으며 거리의 부랑자가 되어 죽은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지니고 다니는 빅슈,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별들속의 양치기와 아가씨 이야기까지 행복하고 아름답기만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이지만 현실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훨씬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또한 우화 형식으로 되어있는 작품들에선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훌륭한 교훈들까지 담고 있고 그의 상상력과 유머가 가미된 익살스런 내용과 더불어 사실적이지만 서정적인 묘사는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만약에 당신이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우리가 잠을 자야 하는 것으로 아는 그 시간에, 신비로운 또 다른 세계가 고독과 고요 속에서 깨어나는 것을 아실 겁니다.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작품인 별들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도데가 붙인 제목 ‘Les étoiles’은 정관사까지 분명한 복수형이며 본문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별들과 별자리들에 대한 설명과 묘사를 생각할 때 단수형 ‘별’은 용납해서는 안 되는 오역이라는 역자의 자세한 설명과 우리가 목동으로, 즉 어린 아이로 생각하고 있는 남자 주인공이 엄연한 성인이며 스테파네트 아가씨 역시 우리가 알고 있던 순결한 이미지가 아닌 그 시대 가톨릭 기반의 도덕 기준이 무너진 뒤의 프랑스 여성의 모습으로 담겨져 있다. 이때까지 잘못 인식하고 있던 부분들을 새롭게 알고 읽은 별들은 확실히 어린시절 교과서에서 배우고 느꼈던 감성과는 또다른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 주변에는, 별들이 거대한 양떼처럼 온순하게 그들의 운행을 조용히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저는, 그 별들 중에 가장 고귀하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길을 잃은 채, 내 어깨에 내려앉아 잠들어 있는...

요즘 소설은 장르도 소재도 무궁무진하며 화려한 필체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들로 무장해 독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하지만 가끔은 화려하지 않아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초록빛 들판과 향긋한 꽃향기가 느껴질 것 같은 고전들이 생각날때가 있다. 비록 허를 찌르는 반전이나 서스펜스는 없더라도 잊고 살고 있었던 삶의 의미나 교훈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허무하게 느껴지던 인생이 소중해지는 작은 의미라도 찾을 수 있기에 오랜 세월이 흘러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읽히는 소설에는 분명 큰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퐁스 도데의 별들 역시 읽다보면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앞에 그려지며 마음이 차분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을 받으며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지워낼 수 있는 휴식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간 학교에서 배웠던대로만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도데에 대해서도 또 별들이란 소설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새롭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지치고 복잡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어지러울때가 온다면 아마 다시 이 책을 집어들고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떠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기, 파리의 병영에서, 우리는 우리의 푸르른 알피유산맥과 강렬한 라벤더 꽃향기를 그리워했었지. 지금 여기, 프로방스의 평원에서는, 그 병영을 그리워하고 있다네. 그리고 그것이 상기시키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소중히 여기고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