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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며느리 - 난 정말 이상한 여자와 결혼한 걸까?
선호빈 지음 / 믹스커피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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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댁복 많은 며느리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결혼한지 이제 7년, 이때까지 고부갈등이란 것을 겪어 본 적이 없다. 우리 시어머니는 여장부 스타일로 딸2,아들2 4명의 자녀를 키워내고 시누이 7명(후덜덜)에 제일 첫째 외아들이자 장남의 아내로 모진 시집살이를 하셨다. 대부분의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시절 겪은 시집살이를 자신의 며느리에게 똑같이 겪게 하는 것을 보면 나는 분명 힘든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것이 맞겠으나 우리 어머니는 소위 옛날사람이심에도 굉장히 깨어 있는 사고를 하시는 분이다. 결혼한 자녀들을 독립된 각자의 가정으로 인식하시고 집착하지 않으신다. 가장 많은 갈등이 되는 제사는 명절을 제외하면 3번을 치르지만 항상 며느리들에게 참석하라는 얘기는 한번을 안 하신다. 우리에게 제사를 물려 받더라도 간소하게 합쳐서 지내고 물려받지 않으면 본인에서 끝내자며 쿨하게 얘기하신다. 명절에도 가장 문제가 되는 친정에 가는 시간은 당일 아침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하고나면 설겆이도 시키지 않으신채 얼른 가라고 먼저 말해주신다. 시댁 식구들 모두와 함께하는 카톡방에서 항상 대화를 나누고 소식을 전하곤 하는 우리 시댁의 이야기를 듣는 대부분의 며느리들은 부러움의 탄성을 자아내곤 한다.
나역시 결혼 전에는 시댁이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친정엄마 역시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에 어렸을적부터 지켜보고 느꼈던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항상 부정적인 감정으로 남아있게 된 것 같다. 특히나 요즘은 부모와 자식간의 세대 격차가 너무나 크기에 훨씬 더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겪고 있지 않다고 해서 무시하고 외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힘들어하고 고통받고 있는 같은 며느리들의 이야기에 나는 다행이라며 위안 삼으며 넘기기엔 너무나 많은 고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보편적인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매너를 묻고 있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에서는 보통 그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왜 고부관계만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을까? 나는 왜 이런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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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기 집안의 갈등관계를 영화로 제작할 생각을 하다니 그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집안의 균열을 누군가에게 드러내는 것은 꺼려하곤 하는데 그는 그것을 유머와 함께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전형적인 며느리로서의 삶을 살아온 가부장적 가정의 시어머니와 자기 생각과 주관이 뚜렷한 며느리 김진영의 만남은 어찌보면 순탄할 수가 없는 조합이다. 내 할아버지도 아니고 남편 할아버지의 제사에 왜 참여해야 하는지 이의를 제기하고 며느리는 손님이라며 시부모님들이 자신을 어려워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고부관계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을 당돌하게 거절하는 그녀를 고지식한 시부모님들이 좋게 봐줄 수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왜 싸우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끝임없이 회피하기만 하는 남편인 저자로 인해 그 갈등은 더더욱 악화되어 간다. 특히 손자가 태어나며 고부관계는 점점 더 나빠지고 결국 며느리는 시댁에 가지 않겠다며 선언한다. 철저한 자신의 주관에 따라 싫은건 싫다고 얘기하며 대충 넘어갈 수 있는 일도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돌직구 며느리와 60여년의 시간동안 습득한 기준과 통념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그것을 며느리에게 강요하는 시어머니. 첨예한 둘 사이의 갈등을 마주하는 수많은 며느리와 시어머니들은 과연 누구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을까?
나는 감독으로서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구성했다. 하지만 ‘며느리’라는 부조리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이 이 영화를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의 잔폭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여자,며느리,아내,어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잔인한 것인 줄은 몰랐다.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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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며느리의 핵사이다와 같은 시원한 발언들에 그간 수없이 접했던 고부갈등의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언제나 가족 구성원중 최하위의 입장에 놓여있지만 시부모님께 싫다는 말 한번 못해보고 끙끙 앓고만 있는 수많은 며느리들에게 그녀의 모습은 잔다르크처럼 비춰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그간 며느리들이 항상 약자의 입장에서 강압적으로 강요되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시대착오적인 관습들을 탈피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반대로 시어머니의 입장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살아왔지만 그런 자식에게서 거절당하는 기분을 받는 다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선 너무나 괴로운 일일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이때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많은 것들이 부정당하는 것 역시 자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부딪힌다면 서로가 일정 부분 양보하고 맞출것은 맞춰가며 살아야 하겠지만 너무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지낸다면 분명 절대 함께 어울러질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이 책의 며느리인 김진영도 시부모님의 모든 것을 깨부수고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크진 않아도 작은 변화를 이끌어 내고 서로간의 선을 넘지 않는 정도만으로도 어느정도의 평화를 유지하게 되었기에 그래도 자신과 상대방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원래 그런 것이고 다들 그렇게 하니 너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도 안돼는 논리로 많은 것을 강요하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허약한 논리를 언제까지나 참아내고 견뎌낼 사람은 없다. “싫어요”라는 이 한마디는 어찌보면 굉장히 건방져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인간으로서 가지는 자신의 권리와 존중을 지키는 한마디가 될 수도 있다. 그저 회피하고 외면하기만 한다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며느리들의 고통이 대물림되지 않으려면 힘들어 하는 여성인 며느리, 시어머니 스스로도, 또 그저 옆에서 관망하기만 하는 남성인 남편,시아버지도 모두다 함께 인식의 변화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조만간 영화도 꼭 챙겨 봐야 될 것 같다.
가부장 질서는 무쇠처럼 견고해 보인다. 하지만 그 기반은 종잇장처럼 허약하다. 어른들의 헐렁한 조언들이 그 증거다. 나와 진영이는 영화 상영 후 객석에서 보았던 여성들의 눈물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란다. 진영이는 그냥 대충 참고 넘어가라는 나에게 말했다. “오빠는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하면서 나를 다시 그렇게 만들고 있어. 나는 거부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