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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 의심 많은 사람을 위한 생애 첫 번째 사회학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1월
평점 :
태어나서 큰 사고를 친 적도, 남에게 해코지 한 적도 없는, 그저 착실히 일하고 나름 시민 의식이라는 것을 잘 지키며 살아온 나지만 그렇다고 큰 성공을 이루며 살아오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 사며 크게 곤궁하지 않게 살았기에 사회에 대한 큰 불만도 문제 의식도 가지지 않은채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굵직한 사건들이 터지면 끓어 올라 열변을 토하기도 하지만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식어버리고 마는 전형적인 한국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탓, 나라탓을 하기 보단 그저 내가 모자라서 내가 잘 몰라서 그런거라며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하고 이의제기보단 그저 참고 수긍하며 넘겨버리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곤 했다.
때로 힘이 필요할 땐 긍정의 힘을 가지게 해준다는 자기계발서를 읽기도 한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자수성가 스토리나 긍정적 사고를 가지면 못할 것이 없다는 달콤한 말은 힘들어 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노력이 부족하다 타박하기도 한다. 그럼 또 스스로 긍정의 힘을 믿어 보자며 힘을 내보지만 다시 또 벽에 부딪히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무한반복 하다보면 결국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끝났다는데 이무기인 나는 조금만 노력하면 용이 될 수 있을것만 같아서 자꾸만 미련을 가지게 된다.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채 말이다.
사람들은 사회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가 아무리 중요한들 자신의 일상이 우선이라는 사고에 너무나 익숙했다.
하지만 정말 나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단군이래 최고의 스펙이라는 청년들이 학업과 알바를 하며 힘들게 높은 학점을 유지하고 비싼 어학연수에 봉사활동에 심지어 보여주기 위한 취미까지 완벽하게 갖추고도 취업을 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을까? 분명 무언가가 잘못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전부 개인의 탓으로만 돌려 버린다. 혹시 사회의 문제가 아닐까라고 반박이라도 할라치면 눈에 불을 켜고 애국심이니 자본주의 논리니 나약하다느니 맹공격을 퍼붓기에 의심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옳다고 믿어 왔던 가치들을 의심하는 그 순간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평소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들었고 또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사회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철저히 계획되고 강력히 주입된 것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믿고 따를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이순신장군이 박정희 시대에 어떤 식으로 우상화 되었는지, 자본주의 논리를 철저히 따른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나 애국심을 바탕에 두고 철저히 노동을 강요당하는 우리 국민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수많은 이득을 챙기며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재벌까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어두운 사회의 이면을 낱낱히 파헤치며 그동안 내가 무엇에 속아 왔고 왜 잘못에 대해 비판하는 사고를 가질 수 없었는지 왜 열심히 일해도 행복하게 살 수 없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게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에 대한 지나친 맹신이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경제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 사회에서 경제는 만고의 진리로 그 어떤 사회적 가치보다 우선시 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것이 아닌데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것만 해결되면 다른 것들은 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현세적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가 온전할리가 없다. 그렇기에 한국의 교육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에 순응하라고 가르치며 자본주의를 비판할 생각은 말고 그 안에서 살아남아 승자가 되라고 가르칠 뿐이다. 그런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강한 멘탈을 가지려 개인이 노력하는 것만이 답일까? 모든 것을 끝없이 의심하고 비판하며 사는 것은 힘들 수 밖에 없으며 언젠가는 지칠 수 밖에 없다.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인간다움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의지의 ‘자유로움’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회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그 보장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래서 ‘같은’ 인간이겠지만, ‘다르게’ 살아간다.
올해 오찬호 작가의 책을 두번째 접하며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날카로운 시선과 쉽게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게 동조했던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또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해야 겠다는 것을 느꼈기에 이번 책 역시 그간 내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으로서의 사회에 대해 알 수 있어 굉장히 신선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왜 우리 각자가 이런 의심과 고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 오기도 했다. 우리의 일상이 그저 상식적으로 돌아가고 우리의 노력이 배신 당하는 일이 없다면 사회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텐데 어째서 이렇게 되버린건지 안타깝기도 하고 그저 손 놓고 흐름에 따라 가기만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무시무시한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훌륭한 충고를 들을 수 있었기에, 당장 행동에 옮기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들다는 생각에 멈칫할 수 있는 우리에게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부터 좀 다르게 해보자’는 것과 과거의 정치가 남긴 끈질긴 재앙을 끊을 수 있는 지금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사회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그에 따른 불만이나 의심을 그저 흘려버리만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올 뿐이다. 그 무엇보다 ‘나를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끝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대안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자체가 상식적으로 변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야 쉽사리 대안을 선택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도 ‘좋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