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 베이비부머 세대의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희망의 노년 길 찾기
김찬호.고영직.조주은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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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이 물 흐르듯 정해진 길대로 순탄하게 가도록 이미 설계되어 있다면, 노후라는 커다란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진 평평한 대로라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없어질까? 애석하게도 우리 앞에 놓여질 미래는 정해진 것이 없으며 예상할 수 없는 안개 낀 날씨 같기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대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노후준비라는 것은 막막해지기만 한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기에도 벅찬 사람들에게 노후를 위한 준비라는건 사치일 뿐이며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도 내가 진정 원하는 인생 2막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건강하고 탄탄한 경제 기반을 마련해 두었다고 해서 행복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긴 세월을 무엇을 하며 보내고 견딜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계획이 없다면 무료하고 공허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정신적으로 점점 피폐해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정신적인 고통은 신체적인 고통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기에 건강하지 못한 삶은 많은 문제를 야기하며 남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이제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시대는 끝났기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채 고독한 생을 마감하게 되는 노후를 누구도 바라진 않을 것이다. 난 아직은 젊은 30대이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것도 버겁기만 할때가 많지만 그래도 나의 노후를 꼰대로서 살고 싶진 않기에 비록 경제적인 준비는 미흡할지 몰라도 행복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위한 건설적인 계획은 세워두고 싶다. 



한 사람의 인격과 인품을 이야기할 때는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누구와 만나고 있느냐이다.

 


지금 노후에 대한 가장 큰 이슈는 이제 정년퇴직을 한 베이비부머 세대이지 않을까 싶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가진 의미는 굉장히 크다. 단순히 한 시대에 태어난 동일한 집단이라기 보다 근대화와 산업화를 온 몸으로 겪으며 비슷한 생애 경로를 처음으로 이탈한 새로운 노년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끝자락에 태어나 보릿고개를 겪고 비약적인 경제 성장에서 자라나 민주화를 이뤄낸 격동의 세대이고 지금 현역에서는 물러났지만 그렇다고 아직 노인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기대 수명이 현저히 늘어난 그들이 보낼 노후의 시간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길어졌기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노후를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이야기에 대한 이 책은 동일한 세대 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에까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생애에서는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서사가 중요하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나라고 하는 인간이 어떤 인간이고,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이며, 또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면 큰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런데 베이비부머 세대가 겪는 고령화 쇼크는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개인의 차원에서건 집단의 차원에서건 이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직 부족하다. 따라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년에 대한 연구와 담론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주관적인 서술이 아닌 베이비부머 세대인 3명을 인터뷰한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사실 대단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 아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과 같은 사람들이기에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선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한 문체나 글이 아닌 친근한 대화이기에 훨씬 더 깊은 마음속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평생을 은행원으로 재직하면서 평범한 대한민국 가장으로 살다가 은퇴한 후 오히려 더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며 문래동 젊은 예술가들과 철공소 아저씨들을 연결하는 지역 살림꾼 문래동 홍반장 최영식님, 고등학교 졸업 무렵 불의의 사고로 선교사의 꿈을 접고 평범한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살아오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의 방황으로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자원봉사의 달인이 된 김춘화님, 대한민국 혁신 학교의 모델이 된 이우학교의 초대 및 2대 교장을 지내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교육운동을 지낸 후 지금은 50+인생학교의 학장으로 시니어 교육 운동에 힘쓰고 있는 정광필님까지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표하는 3명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우리 주변의 아버지,어머니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평범하다고 하여 누군가의 인생이 성공했다, 실패했다는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다. 치열한 삶을 살다 찾아 온 제2의 인생에서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큰 돈을 버는 것도 엄청난 명성과 명예가 찾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세 사람은 그 어느때보다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다 이야기한다. 그들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노후의 시간이 행복할 수 있는건 다른 사람의 의견은 배척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소위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닌 자신과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세대와도 함께 어울리고 수용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늙는다는 것이 즐겁고 반가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며 열심히 일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은퇴를 하고 노후를 맞이하게 된다면 절망적인 허무함과 무료함에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를 혼란에 빠져 매일을 허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면 점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화려한 과거만을 생각하며 꼰대가 되고, 자식은 물론 젊은 세대에게 외면받으며 점점 고독한 생활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될 것이다. 나의 노후가 그런 모습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기만 한데 준비되지 않은 수많은 베이비부머들이 이미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후를 힘들게 보내고 있을 많은 베이비부머들도, 또 언젠가 노후를 맞이하게 될 많은 젊은 사람들도 모두가 걱정하는 경제적인 준비 뿐만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열린 마음가짐과 자기중심적인 이야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타인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아는, 대접받으려고 하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 속의 3명의 주인공들이 그런 자세로 만족스러운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내가 생각했던 노후의 준비라는 것과는 다른 또다른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보다 나의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행복한 노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세대를 새롭게 이해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이 개인 뿐만이 아닌 사회와 국가적인 대책과 계획으로 세워진다면 모두가 노후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저는 나이 듦에 대한 수용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배척하지 않고 스펀지처럼 수용할 줄 알아야 해요. 퇴직 전에 이사였든 해외 지사장이었든 뭐였든 ‘뭣이 중한데’요.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공간, 성 안에서 아무한테도 도움 주지 않고, 아직도 옛 직함을 끌고 와서 지금도 마치 그 조직의 갑옷을 입은 것처럼 행동해요. 수용성이 떨어지는 것이죠. 갑옷을 벗으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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