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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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라는 큰 덩어리 속엔 수많은 조직원이 있고 모두 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 어딘가 튀고 다른 모습을 한 조직원이 있기 마련이다. 같은 규칙과 같은 조건속에서 일하더라도 과정과 결과는 천차만별인 이유일 것이다. 대부분 적응하려 노력하고 동화되려 애쓰지만 굳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되기도 하지만 또 의외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가지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기도 한다. 조직원 각자의 개성과 의사를 중시하는 집단이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지극히 보수적이고 조직문화를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집단이 여전히 많고, 그중 가장 먼저 떠올려 보자면 아무래도 공무원이 생각난다. 안정적인 여건속에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치는, 어찌보면 굉장히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중에서도 검찰은 특히 보통의 우리에겐 엄청난 특권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려운 시험을 합격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따르는 만큼 보상심리도 있을 것 같고 그만큼 자신들만의 확고한 세계 속에 갇혀 입신양면을 위해, 높은 사람들을 위해 더 높은곳으로 향하기 위해 일하는 하수인이라는 편견도 있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특히 더 부정적인 시각이 생긴 것도 있지만 드라마에서 자주 그려지는 검사의 멋지고 정의로운 모습을 실제 생활에서 기대하진 않는다. 그렇기엔 너무 부정적인 일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권력은 영양분과 비슷하다. 누구나 탐하고 벌레가 꼬이며 한곳에 머물면 반드시 부패한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펼친 건, 분명 그 중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시민들의 편에서 일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 문화에 녹아들지 않는 아웃사이더는 어느 곳이든 존재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스스로 ‘자신은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검찰에서의 직장생활은 순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검사로서 생활하는 데 별 탈은 없었다’고 쿨하게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유연하고 열려 있는 조직 문화 덕분이라니 확실히 우리가 검찰이라는 조직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편견과 선입견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생활형 검사라 칭하며 당청꼴찌에 또라이라는 별명이 붙은 검사였으니 확실히 우리가 생각하는 소위 귀족검사라 불리는 검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더욱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의 법률가들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두꺼운 껍질에 싸여 있다. 경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피단 같은 존재들이다. 



저자가 검사로서 일하며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들이다. 사회초년생 젊은 신혼부부의 전세 보증금을 떼 먹는 파렴치한 사기꾼이나 돈을 위해 위증을 하고 무고한 시민을 구속시키게 만드는 사람, 가난한 여성의 꿈을 빌미로 사채를 쓰게 하고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사람, 학교폭력의 피해자지만 가해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아이들까지 철저히 사회의 약자들이고 대부분 보통의 우리들에게 일어날 법한 일들이기에 더욱 분노하고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법은 그들을 지켜주지 않으며 가혹할 정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그 상황과 실제로 대면하며 저자가 느낀 세상의 부조리와 아픔 또한 고스란히 느껴졌다. 특히 우리나라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르며 처벌을 받은 사기꾼 10명 중 8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사기범의 55%는 5개 이상의 전과를 가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나 재판정에 나가보면 피해자의 반신불수보다 피고인의 치질이 더 중병 취급을 받고 그것을 지켜보는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심정, 죄 지은 자들의 갱생과 재활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쓰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지원을 하지 않는 실상에 “그러니 제발 범죄 피해를 당하지 마시라”는 말을 건네는 저자의 충고가 우리 사회와 법조계의 비정상적인 상황과 우리 보통의 시민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믿고 기댈 수 있는 곳은 없는 것인지 답답하고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것은 큰 위기이다. 재산을 비롯한 물리적인 피해를 당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더욱이 사람과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도 잃는다.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흔히 사람들은 위기가 기회라고 설교한다. 정말 그럴까?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듯 위기는 위기다. 그것이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사실 우리는 법조계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많이 배우고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니 많은 정보와 판단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것, 인간으로서 선의를 가지고 약자의 편에서 법의 심판을 내려줄 것이란 희망 말이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마음과는 다르게 권력을 쥔 그들은 점점 부패하고 각종 청탁과 함께 자신들의 출세에만 눈이 먼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과 권력으로 사람을 짓밟고 그것을 끝까지 쥐고 있기 위해 영혼까지 팔 수 있을 것 같은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칼자루을 쥐어준 것일까. 처참히 뭉개져 버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은 분명 지켜져야 하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응당한 대가를 치뤄야 함이 분명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앞으로 바뀌어야 할 그리고 나아가야 할 법조계의 모습이 지금으로선 꿈같이 멀게만 느껴지기만 한다. 무엇보다 범죄의 피해자 신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와 실제 피해자에 대한 더 세심한 구제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어째서 우리나라의 법은 피해을 입은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지우고 가해자에겐 아무 불이익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건지 결국 저자의 충고대로 범죄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밖에 없는 건지 답답하기도 했다. 나역시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기에 올바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길을 우직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우리 사회도 점점 더 좋아질 수 있도록 우리가 끊임없이 견제하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의 눈으로 자신이 포함된 검찰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민낯을 보여주기에, 내가 포함된 조직의 모습은 과연 그에 비해 정직하고 정의롭다 여길 수 있는지, 조직원으로서의 나는 어떤 사명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눈물 흘리기 좋은 감성적인 소재가 아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냉철하고 엄중한 과제이자 요구이다. 존엄한 것은 함부로 대할 수 없고, 훼손될 경우 반드시 응분의 대가가 따라야 한다. 마음대로 짓밟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존엄한 것은 두려운 것이고 원시적인 것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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