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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평점 :
아이를 키우며 부모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가지게 된다. 아이의 인생에 해가 되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선택하려 노력하지만 그 이면엔 부모의 무수히 많은 고민과 고뇌의 시간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아이에게 위험의 순간이 오게 된다면 그 죄책감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에 작은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따져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니며 약을 달고 살고 둘째는 어쩔 수 없이 언니에게 옮아 줄줄이 아플때가 많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홍삼,유산균,비타민등등에 시댁에서 챙겨주신 산삼까지 면역력에 좋다는 것들을 많이 먹이지만 사실 눈에 띄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진 못했다. 게다가 둘다 기관지가 안 좋아 매번 아프면 항생제를 먹으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주 아픈 아이들이기에 예방접종은 한번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맞히고 있고 독감접종 역시 올해도 접종했기에 나는 백신에 대해 아무런 의심의 여지 없이 무조건 맞혀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졌었다. 사실 그게 정확히 어떤 백신인지, 심지어 무엇을 예방하기 위한 접종인지조차 모른채 그저 맞히라는 문자가 오면 순순히 맞히기만한 엄마였다.
하지만 얼마전 논란이 된 ‘안아키’를 통해 백신에 대해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부모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보기엔 잔인하고 무책임해 보였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신념과 생각으로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 아래 부모의 선택에 따를 수 밖에 없으니 아이들의 고통스런 모습이 더욱 안타까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이 과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난 아직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면역은 공공의 공간이다. 그리고 면역을 지니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그 공간을 점거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어머니들에게는 백신 거부가 자본주의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저항의 일환이다.
하지만 백신에 대한 찬반은 굉장히 격렬하고 또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어느쪽 이야기를 들어도 사실 명확한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새로운 공간에서 생활하게 될텐데 병원의 무균실처럼 아이들을 가둬놓고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기본적으로 제약회사들을 100% 신뢰하는 것은 아니며 아이들의 소아과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갈팡질팡하다 결국은 그냥 수긍하기 일쑤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며 겪는 면역과 백신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하고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런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대해 어떻게 보면 의학서적 같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같기도 하고, 또 여러가지 문학작품에 담긴 이야기들이 나올 때면 인문서적 같기도 한 여러가지 복합적인 형태로 흘러가는 책이다. 그녀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에서 보고 듣고 느낀것들이기에 특히 더 많은 공감이 되고 또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았다.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에 흔들리기도 하고 끝없이 묻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하는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 왠지모를 동질감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사람들은 백신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특히 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괴담은 나역시 들어본 적이 있고 미국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소송까지 걸정도였는데 판결은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다고 내려졌음에도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백신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와 더불어 백신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제약회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위험성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수많은 카더라 통신은 부모들을 점점 혼란스럽게 하고 또 그만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죽어가는 아이들 또한 많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사망원인은 질병보다는 사고가 살인보다는 자살이 더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의 경우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들은 오히려 겁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운전을 하고,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탄다. 그러면서 오히려 통계적으로 따져서 별달리 위험하지 않은 것들을 걱정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을 잘못 판단하기도 하고 측정 불가능한 두려움으로 인해 진실을 왜곡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아마 그런 사람에게 백신은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백신을 무조건 반대하지도 그렇다고 백신을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잘못된 인식이나 거짓된 정보를 진실로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에 결론적으로 선택은 스스로 해야하는 것이지만 내 개인적인 안위만을 위한 것이 아닌 집단면역의 원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훨씬 효과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백신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또 그렇기에 거부하고 있다. 히지만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에 누군가 수많은 거짓 속에서 진실을 밝혀내 주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런 의구심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백신을 맞히든 맞히지 않든 어쨋든 그런 선택을 하는 부모의 마음은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그 선택이 가져 올 미래에 대한 책임감에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진 부모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마음속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많은 걱정과 우려가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그런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기에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완전한 무균의 상태로 키울 수는 없기에 아이를 온실 속에서만 애지중지 키우지 않고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에서 맘껏 뛰놀고 스스로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는 면역을 키워주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아이를 어느 정도까지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전혀 취약하지 않게 만들 순 없는 것처럼, 아이도 전혀 취약하지 않게 만들 순 없다. 도나 해러웨이가 말했듯이, <인생이란 취약성의 기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