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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안드라 왓킨스 지음, 신승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여행이라는 것이 이젠 보편화 된 문화의 하나이고 예전처럼 돈 있는 사람만의 전유물로 생각되는 시대는 아니기에 가는 곳도,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관광지를 구경하기 보단 각자 추구하는 의미와 목적에 따라 수만가지 여행이 가능하기에 단순히 쉬고 즐기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여행을 떠남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이나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많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굉장히 중요하겠지만 누구와 가느냐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아무리 평상시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나 오랜시간을 이어온 관계라도 여행을 갔을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부딪히기도 하고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기에 여행은 최대한 마음이 잘 맞고 성향이 비슷한, 평상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친밀도가 높은 사람과 가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전 엄마와의 여행을 떠난 책을 읽으며 엄마와 단둘이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딸의 용기에 박수를 친 적이 있지만 딸과 아빠의 여행이라니.. 이건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이야 아이들과 친구처럼 친밀하게 지내는게 어색하지 않지만 45살 딸과 80세 아빠라면 그 사이가 어땠을지 사실 어림 짐작이 되는 바이기에, 험난한 여정이 되지 않을까란 우려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아빠와 나눈 대화는 대부분 상처를 주는 말과 의미심장한 침묵으로 산산조각 났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우리의 과거사를 청산하고 한 달 이상 서로 참고 견딜 수 있기를 바랐다. 뭐, 아빠야 여전히 나를 거부할지 모르지만.
45세 딸이자 이 책의 저자인 안드라 왓킨스는 공인회계사로 일하다 소설가로 데뷔하게 된다. 이 책은 그녀의 첫 소설을 홍보하기 위해 소설의 주제가 된 미국의 탐험가 메리웨더 루이스의 발자취를 따라 34일간 714킬로미터에 이르는 나체즈 길을 걸얼던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그 여정을 함께 하게 된 부녀의 여행기는 서로에게 너무나 서툴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힘들고 아름다운 여정의 자연 속에서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풀어가며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도보 여행이 실현되지 못한 꿈에, 가지 않은 길에 빛을 비춰줄까? 이 여행이 사람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라도 모험을 감행하도록 격려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몸을 덜덜 떨면서 다리를 건너는 지금, 이미 내가 좌절한 마당에 어떻게 다른 사람의 꿈에 불을 지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쓴 책에 대해서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아빠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책을 출판하면 한순간에 유명해 질꺼란 생각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고, 꼬일대로 꼬인 아빠와의 관계에서도 아빠를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매번 만나면 싸우고 헐뜯기 바빴던 부녀사이였기에 그런 그녀가 아빠와 함께 떠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당뇨와 많은 지병으로 거동조차 편하지 않은 아빠가 그 여행을 수락한 것 역시 놀랍긴 마찬가지 였다. 서서히 인생의 끝에 다다르고 있는 아빠와 중년의 새로운 출발을 앞둔 딸의 서로 다른 인생의 시점에서 과연 아무 충돌 없이 끝까지 그 긴 길을 걸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처음 힘든 여정을 시작할때만 해도 소설의 성공에 목말라 있었다. 아빠와의 여행이라는 거창한 목표가 아닌 그저 임무를 완수하고 큰 홍보가 되어 자신의 첫 소설이 크게 흥행하기를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발톱이 빠지고 살점이 다 드러날 정도로 혹사 당하는 발과 근육의 고통은 점점 그녀를 한계로 몰아가며 포기하고자 하는 나약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한다. 단지 책의 홍보를 위해서만 계속 여정을 이어갔다면 아마 그녀는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눈 앞에 펼쳐진 자연과 끝없이 이어지는 고독의 시간은 그녀의 생각과 마음을 점차 바꾸어 놓기 시작하며 그와 더불어 딸의 책을 열심히 홍보하고 팔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점점 활기가 생기며 그 옛날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그녀 역시 힘을 얻고 점점 아빠를 이해하고 더 사랑하게 된다. 비록 그 표현은 다소 과격하더라도 어쨋든 점점 서로에게 다가가고 풀어지는 관계는 그 여정이 가진 가장 큰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증이 극심해서 괴로웠지만, 계속 나아가는 아빠를 보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사그라뜨릴 수는 없었다. 내가 특별한 선물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선물은 늙어가는 부모와의 모험이었다.
나 역시 아빠와는 그렇게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아빠가 어린시절 우리 자매를, 또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셨지만 우리 아빠 역시 표현을 하시는 분은 아니셨기에 물론 그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나또한 표현하는 것에 인색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아빠와 단둘이 여행을 가라면 선뜻 그러자는 대답을 하진 못할 것 같다. 그건 엄마와도 마찬가지다. 사이가 나쁜것은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표현과 대화가 부족했기에 어색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자신이 아직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정 남아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번뜩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알고 있지만 부모님이 나의 곁을 떠나는 시간이 온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고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서로의 일상에 바빠 주말에 한번 만나는 것도 힘들어졌기에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을 생각해 볼 여유도 없다. 저자처럼 긴 시간 의미 있는 여행을 갈 시간도 없지만 꼭 그런것은 아닐지라도 짧게라도, 멀지 않더라도 함께 가보지 못한 곳을 다녀보려는 노력을 해야 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뒤늦게 후회하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단 몇 시간이라도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함께한 여행에서 평생 남을 추억이 쌓이기도 하기에 미루고 또 미루다가는 정말로 늦어버려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후회하지 말고 지금 내 곁에 계시는 부모님들을 좀더 소중하게 생각하자는 그 중요하지만 잊고 살기 쉬운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기에 그녀의 여행도 나의 독서도 훌륭한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 모험의 모든 요소를 아주 작은 것까지 다 기억하고 싶었다. 아빠의 웃음소리. 엄마가 내 이름을 말하는 방식. 나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와 아빠를 꼭 끌어안고 그들을 내 뇌 회로에 깊이 각인시켰다. 누군가 우리를 기억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