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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키퍼스 와이프
다이앤 애커먼 지음, 강혜정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평점 :
현대의 동물원은 동물들의 입장에서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생명의 일원이라는 생각 하에 좀더 동물들이 중심이 되는 동물원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야생의 동물을 가둬 두고 눈요기로 삼는다는 비난도, 동물원이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실제 동물들을 볼 수 없다는 옹호도 어느쪽으로 기울 수 없는 복잡한 존재가 동물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동물들의 권리나 생명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시절이지만 동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극히 보살피는 동물원의 원장인 얀과 그의 아내 안토니나가 있었다. 그들은 동물원 안의 빌라에 지내며 동물원을 꾸려 나갔고 그곳은 숲 가까이에서 희귀종과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보존되고 있는 폴란드의 바르샤바 동물원이다. 폴란드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 숲과 동물원이었고 특히 안토니나는 동물들과 깊이 교감하며 친숙해지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미를 잃은 새끼나 아픈 동물들과 같이 특별히 관리가 필요한 동물들을 집안에서 돌보며 평화로운 생활을 하던 중, 독일 나치에 의해 바르샤바가 점령되는 과정에 동물원은 파괴되고 동물들도 모두 흩어지게 되며 나치의 유대인종학살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음을 당하는 공포의 시대를 살아가게 된다. 그런중에도 얀과 안토니나는 그런 독일군을 피해 숨어지내는 유대인들을 도와주고 자신들의 빌라에 은신처를 마련하며 게토에 고립된 수많은 유대인들을 도피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당시 유대인을 도와주거나 묵인하는 것 만으로도 즉시 사살되었지만 그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그들을 도왔고 또 그들을 살려냈다.
이곳에 야생의 자연, 그 사납고 아름다운 괴물이 살고 있었다. 우리 안에서 사람들과 벗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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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모든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과 독일인들의 잔인한 행태와 그 시절을 살아갔던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의 참담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무 잘못 없이 그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의 재미와 희열을 위해 동물들을 죽이는 말도 안돼는 독일인의 행동에서 우리나라가 겪었던 식민지 시절 일제의 악행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수많은 고초을 겪었고 독립투사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독립을 겪었기에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지 않을까.
친위대는 고유한 생명체로서 동물들의 존엄성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원초적 공포나 고통을 가진 존재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자극만 좇는 포르노그래피와 다를 바 없었다. 여기서는 살육이 가져다주는 순간의 스릴이 생명체의 목숨보다 중대했다.
안토니나가 남긴 기록과 인터뷰를 통해 쓰여진 이 책은 동물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그에 대한 방대한 지식들에 놀라기도 하고, 저자가 전쟁 당시의 상황을 직접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 이야기에서 폭탄이 터지는 전쟁통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글로 기록하고 사람의 목숨도 부지하기 힘든 시기에 동물들까지 함께 돌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말도 안돼는 상황에서도 안토니나는 행복을 느끼고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에게도, 또 동물들에게도 그것이 오롯이 전해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잔인한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는 건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를바 없을 것이다.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총알과 폭탄 앞에서 사람과 동물은 그저 연약한 한 생명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황에서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동물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희생할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것이 아닐 것이다. 동물원에 가둬진 채 야생성을 잃어가는 동물들이 불쌍하다고 느껴지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략해 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 옛날 폴란드의 한 동물원에서는 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 인해 많은 동물과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하고 가져야 할 생명의 소중함이나 동물과의 공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준 책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든 순간이 위대하다고 배웠다. 매순간이 단 한 번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