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맛 창비청소년문학 80
누카가 미오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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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버린 나지만, 아직도 내가 진정한 어른인걸까? 라는 생각을 가끔씩 하곤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어른이란 또 뭔데?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며 떠오르기 마련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나에게 와서 진정한 어른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아이와 어른이란 그 사이의 혼란스러운 과도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은 아마 나보다 더 수많은 의문에 가로막혀 정답과 길을 찾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찾아내는 수밖엔 없다. 스스로 느끼고 겪어 보지 않는 한,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할 참고서 따윈 주어지지 않는것이 인생이다. 대학생이 되면 앞날에 대한 길이 열릴것이라 생각하는 학생들이 대다수겠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하게 되는 20살은 더욱더 혼란스러울뿐이다. 그래서 그것이 공부에 치여 살아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오로지 입시만을 위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이유다. 하지만 여기, 자신의 인생 과도기를 치열하게 보내며 자라고 있는 주인공들이 있다. 


한때 고등학교 육상부의 전도유망한 에이스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육상의 꿈을 접고 요리부에 들어가며 요리에 빠지게 된 소마, 그런 형 소마를 동경하며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어느새 형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육상 에이스로 자리매김하는 하루마, 요리부의 유일한 부원이자 소마와 함께 요리를 하게 된 시니컬한 미야코, 그리고 육상을 그만둔 소마의 달리기를 진정으로 좋아한 고등학교 육상부 1등 스케가와. 한 고등학교 육상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들의 이야기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아픔과 시련을 통해 그것을 스스로 극복해 가며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학창시절에 이미 자신이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에 매진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그 일에 대한 길이 막혀버린다면 그에 대한 상실감도 어마어마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면에서 소마에게 달리기란 전부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다신 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게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이지 않을까. 하지만 소마는 재활치료를 하고 다시 복귀할 것이란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재활치료도, 육상부 복귀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채, 그저 회피하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시작하게 된 요리는 소마를 푹 빠지게 만든다. 상대방과 그리고 나와의 끊임 없는 경쟁이던 달리기와는 달리 요리는 그 어떤 경쟁도 하지 않아도 되기에 소마는 점점 더 요리를 도피처로 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부상이라는 명목상의 핑계를 대며 달리기를 그만 두지만 진짜 진실은 묻어둔 채로 말이다. 



그는 달린다. 바람을 가른다,라기보다 바람에 올라탄 듯이. 온몸이 바람 속에 스며들듯이, 가볍게 날듯이. 그 모습은 다른 누구와도 달랐다. 



시니컬하지만 미야코 역시 이면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싸움과 이혼으로 따뜻한 보살핌 한번 받지 못한채 자신은 짐처럼 취급되며 주변으로부터 불쌍한 아이라는 동정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큰 상처일까. 미야코는 어느새 스스로 요리를 하게 되며 본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또 성숙한 인간으로써 자라나가게 되기에 그런 요리를 통해 소마에게도 같은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린 국물의 감칠맛이 나메로를 감싸며 부드럽고 따스하게 몸 안으로 들어온다. 행복을 날라 온다. 밥이 맛있다는 행복. 행복이 다가오는 발걸음은 오물오물, 사각사각, 꿀꺽꿀꺽 하는 소리가 났다. 




사실 부상은 소마에겐 달리기를 그만둘 좋은 핑계일 뿐이다. 어느샌가 동생 하루마가 자신을 앞질러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형으로서 동생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하지만 동생인 하루마 역시 자신이 동경했던 형의 달리기를 다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부상을 딛고 일어서 주지 않고 요리에만 빠져드는 형이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이던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결정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어떤 좋은 조언을 해주더라도 본인 스스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남탓을 하며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 들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깨달아 가는 그런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 과정을 읽으며 어른이라는게 뭔데? 라는 물음에 그래, 어른으로 성장한다는건 이런거지라는 잊고 있었던 답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른이라 불리는 나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는지,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건 무엇인지 많은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뒤죽박죽 섞인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찬찬히 정리해 나갈 수 있는 좋은 생각의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그는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손에 넣은 것이다. 자신과도 동생과도 다른 미래를 발견하고 다른 길을 걸어가겠다고 선택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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