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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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처음 읽었던 아멜리 노통브는 '이게 뭐지?'란 처음의 느낌이 점점 묘하게 빠져드는 매력으로 바뀌며 

어느 순간 몰입하게 만드는 기묘한 사람이란 기억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잊고 지내던 그 이름을 다시 마주한 순간, '역시 그녀!!' 라는 작은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벨기에의 몰락해 가는 귀족 앙리 느빌. 
그가 바로 제목의 범죄를 저지르게 될 인물이다. 
심각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막내딸 세리외즈의 한밤중의 가출로, 점쟁이를 만나게 된 그는 

파산으로 인해 아끼는 플리뷔에성을 팔기전의 마지막 가든파티에서 초대받은 손님중 한명을 죽이게 된다는 예언을 듣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그 예언은 점점 더 느빌의 마릿속을 잠식하게 되고, 

막내딸 세리외즈는 그 파티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죽여 달라 이야기 한다. 

과연 느빌 백작의 범죄는 실제로 일어나게 될까?




소설의 중심 인물은 앙리와 세리외즈이다. 
곧 몰락할 귀족인 앙리 느빌 백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귀족과는 다르게 한번도 화려한 귀족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귀족으로써의 체면과 위신을 중시했던 아버지로 인해 누나인 루이즈를 잃었다. 아픈 자식을 위해 치료도, 음식도 내주지 않으며 
결국 죽음으로 몰고간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지만 자신 역시 아버지와 다를바 없는 귀족으로써의 삶을 살고 있다. 
파산을 하여 허름한 집으로 내몰릴 위기에도 불구하고 성대한 마지막 파티를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광경은 내 눈, 내 귀, 내 정신을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
그런데 내가 이 완벽한 세계를 영원히 파괴하게 될 거라니!
내가 살해하는 건 내 딸만이 아냐.
내가 끝장내는 건 바로 이 세계야.
난 낡아 버린 궁정풍의 정중함, 함께하는 우아한 예술의 마지막 대표자야.
나 이후로는 사교 행사밖에 없게 될 거야.



앙리 느빌의 셋째딸인 세리외즈는 질풍노도의 무서운 시기인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고 있는 것 같다. 
어릴적 빛나던 생기와 발랄했던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어둡고 비관적인 모습만이 남았을 뿐이니 말이다. 
그녀는 신체적,정신적으로 커가면서 자신의 열등감도 함께 커간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칭송받는 오빠,언니와
그저 평범한 자신을 비교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테니.. 그렇게 점점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 가둬진 세리외즈는 수많은 고전책을 읽어가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세상과 단절된 채 오래된 책들을 읽으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결정하게 된 것이 아닐까. 아가멤논의 신화에서 따온 오빠, 언니의 이름과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바친 자신의 셋째딸. 
비록 그녀와 이름은 틀리지만 자신 역시 그렇게 될 운명이라며 비관적인 운명론에 자신의 처지를 덧씌워 죽음을 갈망하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정말 원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수도 있지만 굳이 자신을 죽여 달라며 아버지에게 애원(?)을 하니 말이다. 




분명 2014년이 배경인데, 중세시대의 느낌이 나는 것은 성이며 백작이며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기 때문일까? 
게다가 책은 또 왜 이리 술술 읽히는지, 책을 읽었다기 보다 한편의 연극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화와 독백이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곳곳에 묻어 있는 
그녀의 재치와 유머, 풍자는 읽는 내내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기에 한장 한장 넘겨지는 책장이 아쉽게 느껴진건 아닌지..


느빌 백작을 보며 중세시대나 지금 이 시대나 특권층이라 불리는 이들의 허례허식은 변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보다 그들에겐 자기들이 속한 그 사회가,또 그들에게 비칠 자신들의 모습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선 그 어떤것도 중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자신의 누나를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는 아버지를 보며 원망했으면서도 
자신 또한 마지막 파티를 위해 곧 허름한 집으로 쫓겨날 가족들은 외면한채 모든것을 쏟아 붓는 어쩔 수 없는 귀족이 되어버렸으니까. 
언제나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갇힌 편협한 귀족인지라 점쟁이의 말도 안돼는 예언에도 스스로 갇혀 휘둘리고 마는 그 모습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의 권력층과도 별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고 지내던 그녀를 다시 읽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그녀의 소설을 처음 읽던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 생각나기도 했다.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 들었던 음악을 매개체로 그 시절을 회상하곤 하지만, 이번에 난 그녀의 책을 처음 읽었던 소녀시절로 돌아가 다시 읽고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별로 변하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에서,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나를 마주했지만 여전히 유쾌한 그녀의 이야기에서 슬픔 보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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