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 내게 왜 여행하느냐 묻는다면
박세열 글.그림.사진 / 수오서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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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여행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게 되는 것 같다. 작은 책 속에 담긴 내가 아닌 그들이 경험한 함축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보는 것이 얼마만큼의 욕구충족을 느끼게 해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컸기에, 무조건 직접 경험해 보자는 주의였지만 그럴 수 없는 여건에 오랫동안 직면해 있다 보니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북적이는 공항의 기운과 좁디 좁은 좌석이지만 내겐 너무 안락한 비행기, 낯선 곳에서 딛는 첫 발자국의 짜릿함. 느껴 본게 언제더라..?



내가 여행을 떠나며 바라는 것들은 뭐였을까. 새로운 경험, 인생의 전환점에서 필요한 해답, 재충전, 휴식..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들려줄만큼 특별한 여행은 없었다. 큰 깨달음을 얻은 것도, 스펙터클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해 보이는 여행. 하지만 일상이 힘들어 지고 버거워 질때, 그 무엇보다 여행의 기억을 가장 먼저 되살리며 곱씹어 보게 된다. 그냥 다시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잠시나마의 위안과 위로가 되는 것. 새로운 곳으로 지금 당장 떠나지 않더라도 예전의 그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다시 설레고 기운을 얻게 되는 것. 나에게 여행은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한때 다른 여행자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갈구했었다. 
그리고 그들처럼, 빨리 익숙해지고 싶었고 

그럴듯해 보이고 싶었고
여권의 입국 도장이 가득하길 바랐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첫 여행은 첫사랑이더라. 
미숙하고 실수뿐이었던 시간. 그래서 더 아름다운. 
그러나 그땐 그걸 알지 못한 딱 한 번의 소중한 기억. 



 


여행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는 것이 좋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이라는 방법을 많이 선택할 것이다. 특히 요즘은 스마트폰 카메라의 발달로 무거운 카메라를 따로 챙길 필요도 없는데다가 용량도 넉넉하니 손쉽게 여행의 순간 순간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여행을 사진과 그림으로 남겼다. 그곳의 풍경과 그곳의 사람들을 자신의 느낌대로 그리고 표현하고, 머물었던 곳엔 벽화를 그리기도 하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도, 그들이 먼저 다가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말없이 한곳을 바라보며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저자에겐 스스럼 없이 먼저 말을 걸어주고 친구가 된다. 그림이라는 훌륭한 매개체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 누구와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신비한 역할을 하기에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 수 있었다. 



손쉽게 여행을 하는 방법도 많고, 미리 정해둔 루트대로 철저히 다닌다면 위험을 마주할 확률도 적어진다. 워낙 빙대한 정보들이 많다 보니 미리 조금만 공부를 한다면 유명한 관광명소만을 찾아 가고 이름난 맛집만을 찾아 다니며 실패할 확률 또한 낮출 수 있다. 그렇게 하나씩 배제해 가며 다니는 여행은 훗날 기억속에 어떻게 자리 잡게 될까? 사실 무난하게 좋았거나 그럭저럭 맛있었던 음식이 평생동안 마음속에 간직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계획 없이 떠난 무모한 여행이나, 궤도를 벗어난 여행길에 우연히 들른 최악의 숙소에 맛 없는 음식일 지라도 내가 그 곳에서 직접 부딪히고 겪었던 일들은 지나고 나면 그럴싸한 무용담으로 탈바꿈해 두고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좀 무모해 보이거나 게을러 보이는 여행일지라도 훗날 다시 떠올렸을땐 지그시 미소 짓게 되는, 그런 여행을 저자는 해 왔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여행의 많은 기억 중 아름다운 것들만 남는다. 혹은 아름답게 왜곡되어 기억된다. 
가끔은 그곳의 풍경이, 만난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과 나눈 대화의 기억이 서글퍼지거나 아리기도 하지만 시간은 그 기억들을 아름답게 잘 포장해준다. 



 


여행을 가기전의 힘들었던 상황이나 팍팍했던 현실에서 회피하고 싶어서 떠날 수도, 권태로운 일상이나 익숙함이 싫어 낯선곳으로 떠난 것이든 어쨋든 여행이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다. 그곳에서 엄청난 깨달음이나 커다란 위로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안도할 수 있다면, 소소한 일상이 이토록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느끼는 것 만으로도 그 여행은 의미가 있는 여행일 것이다. 저자 역시 여행으로 인해 거창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것도, 지금 당장 모든걸 뒤로 하고 떠나라고 부추기지도 않는다. 여행에서 느껴지는 대로 충분히 느끼되 다시 돌아가서 자신의 일상에 감사하고 다시 살아가라는 것. 대단한 수식어를 붙히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공감되는 여행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그동안은 왜 이렇게 살지 못했을까?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조금만 더 하늘을 바라보며
조금만 더 웃고 지내면 되는 거였는데. 
이렇게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벌레가 없는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카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한다는 것,
이런 사소한 것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왜 여태껏 몰랐을까?



 


현실이 어떤 상황이라도 내가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나를 다시 떠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에서 받아온 기운과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또다시 충전이 필요할 때쯤 어느샌가 티켓팅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나도 가끔 모든걸 훌훌 털고 떠나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때,이 책을 다시 들어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상이 버거울때 그 버거운 일상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여행 하는 그 순간보다 마음속에 남겨진여행의 기억이 행복하다면 그 기억을 꺼내보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을 받을 수 있기에 두고 두고 꺼내 볼 그 기억을 쌓기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떠나는가 보다. 



어쩔 수 없나 보다. 여행이라는 것을 문신처럼 내 몸, 내 습관에 새길 수는 없는 것인가 보다. 그저 오랜 달리기 끝에 마시는 물처럼 잠깐의 갈증만 짜릿하게 풀어주고 다시 뛰기 시작하면 또 다시 목이 마르는 것처럼, 어쩔 수 없다 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매번 다시 떠나나 보다. 목이 마르니, 다시 그 목을 축이러. 그러곤 이번에도, 돌아가서는 여행할 때처럼 살아볼 거야, 라고 다시 다짐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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