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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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게 더이상 돈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누구든 쉽게 떠날 수 있고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난 목적과 목표를 뚜렷히 가지고 가는 여행을 선호 하진 않는다. 
그냥 훌쩍 떠나고 싶어 떠나는, 단지 '쉼'을 위한 여행이 좋다. 
비싼 돈 들여 가는 여행이니 열심히 보고 다니고 흔적을 남기기 보단 
그곳의 분위기에 몸을 담고 몸과 마음을 충분히 충전하는 그런 여행, 
내가 지향하던 여행에 대한 그 느낌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듯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 글들은 나 또한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싶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와 생각과 가치관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
어려운 일이지만 발견한다면 또 너무나 기쁜일이다. 
같이 평생을 함께 살아 온 가족들이라 해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맞을 순 없으니 말이다. 
처음 만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때 나와 같은 마음,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의
그 묘한 짜릿함과 설레임. 행복한 순간이다. 
이 책을 읽었을 때 그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여행이 일상을 벗어난 아주 특별한 상태가 아니라 일상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른바 '편도행 티켓'을 끊어 어디론가 떠나바리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도 있지만, 그건 나의 것은 아니다. 
아마 그런 여행은 나의 죽음, 그것으로 한 번일 것이다. 



 
도심을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공항버스의 편안함,
공항의 북적거림 속에 묻어 있는 설레임과 긴장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부터도 너무 좋다. 
떠나기 전의 그 흥분이 사실 여행지에서는 조금씩 식어가기에 여행전의 그 마음이 난 더 좋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돌아와야 할 일상이 있다는 것이 낯선 여행에서의 표현 못할 불안을 적당한 긴장감으로 바꿔주는것이라 생각하기에, 
내게 여행은 언제나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란 의미가 크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가지는 의미와 내가 가지는 의미가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이 많았기에, 
더 공감되고 더 몰입되어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여행으로 뭘 배운다는 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기껏 제자리에 돌아오려고 어딘가로 떠나는 일, 같은 자리에 있기로 했다고 해서 그 전과 같은 사람일 수는 없는 법이다. 



 
전 세계 가보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매번 여행때마다 가보지 못한 곳을 가는 것도 좋지만 
힘들거나 지칠때 훌쩍 떠나도 언제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나만의 여행지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인것 같다. 내집이 아닌 곳에서 느끼는 익숙함과 편안함. 저자처럼 한 나라를 여러번 가본 적도, 
또 가볼 시간도 없지만 꼭 외국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서라도 그곳의 풍경과 냄새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그런 장소를 꼭 찾아보고 싶어졌다. 여행이 꼭 새로움과 낯섬을 동반해야 하는것이 아닌 지금 나의 일상에서의 연장선상에 놓인 듯한 여행.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느끼는 것도 좋지만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 있다는 안도감은 
힘든 일상을 버티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또 하나의 일상을 발명하는 일. 
여행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졸리지 않으면 자지 않는다. 
음악을 배경으로 쓰지 않는다. 
뜻을 모르겠는 여행지의 소음 속에 그냥 서 있는다.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생각하며 바람을 느끼며 걷는다. 
시계를 보지 않고 맛을 느끼며 먹는다.
지하철에서 뛰지 않는다. 
깊게 숨을 들이마쉬고 내쉰다. 
바뀌는 신호등을 보내고, 출발하는 버스를 그냥 보낸다. 
시간을 그냥 보낸다. 
여행에서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약한 숙소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거나
캐리어가 통째로 사라지거나 소매치기를 당하기라도 한다면 말그대로 멘붕이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아무일 없었던 평탄했던 여행보다 
사건 사고가 많았던 험난했던 여행이 얘깃거리며 추억으로 가득해 두고두고 회자되니 
여행에서의 고생은 사서 하는 고생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집 떠나면 힘들고 고생할것을 뻔히 알지만 그래도 떠날 수 밖에 없는 매력, 
그 매력에 이끌려 사람들은 오늘도 다들 떠날 수 밖에 없다 보다. 




돈을 들여 고생해보고 그 고생을 통해 배우는 일. 일상에서라면 우리가 마냥 절망하고 우울해 할 그 경험들이, 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놓이면 무용담이 되고 추억이 된다. 
 
대부분의 고된 인생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 간다. 힘들고 지친 일상을 벗어나 맞이하는 멋진 풍경과 여유로운 시간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껴질만큼 힘들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휴가를 낼 수도, 그렇다고 시원하게 사표를 쓰고 떠날 수도 없다. 
버티고 또 버티는 힘겨운 삶에 직접 떠날 수 있는 용기도, 시간도 없다면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요즘은 SNS에 올라오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해 보이는 여행 사진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남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정말 나를 위해 떠난 여행의 여정을 담아 둔 책이라면 그 마음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느껴질 것이다. 
지금 당장 떠나라는 말이 아닌, 머나먼 지구 반대편이나 값비싼 비행기 티켓이 필요한 곳이 아닌, 여행을 다녀오지 않고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내 안으로 여행하기'를 해보는 것. 
그것이 저자가 진정으로 휴식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여행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리고, 그 결과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없이 충만했던.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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