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연애라는 단어도 실연이라는 단어도 이제 내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일이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날카롭게 싸우기도 하며 채워지는 두 사람의 연애는 
결국 실연이라는 슬픈 감정으로 끝이 난다. 
모든 사랑의 마지막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겠으나 
'실연'이라는 단어의 느낌을 그 누가 즐겁고 행복하다 느끼겠는가.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도 가정을 꾸리고 연애의 종지부를 찍은 사람도
실연의 아픔을 함께 공감해 주진 못할 것이다. 
지금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 있는 사람들,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의 모임이 있다면 
퉁퉁 부은 두 눈으로 모임의 참석을 신청하게 되지 않을까?



각자 다른 이별을 겪은 사람들은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모임'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레스토랑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영화제에 참여하게 된다. 
또한 가지고 있기도 싫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는 실연의 기념품을 
서로 나누며 실연의 아픔 또한 털어내려 한다. 
서로 다른 이별의 모습을 가진 사강과 지훈이지만 둘은 미묘하게 엮이며 
자신들이 떨쳐 내지 못하고 있는 아픔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였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힘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각자가 느끼는 고통과 제각각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사강과 지훈은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될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각자가 내놓은 실연의 기념품을 선택하게 되며 그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신기하게도 점점더 좁혀져 오는 그들의 거리와 칠흙같은 어둠에서 마주하게 된 
허상되 보이는 하나의 빛을 마주하며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또 실연의 그림자로부터 서서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타인의 슬픔을 마주하게 되면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하지 않던가. 
남김없이 토해낸 아픔만큼 더 큰 위로를 받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비밀을 듣는다는 건 큰 책임을 요구한다. 
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책임, 간직하는 동시에 떠나보내야 하는 책임, 
묵언의 서약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비밀을 꺼내놓아야 하는 책임, 
비밀은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그네 짓눌린 무게의 짐을 스스로 덜어놓는다. 



 

연애를 우연히 이루어진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애는 질문이고, 누군가의 일상을 캐묻는 일이고, 취향과 가치관을 집요하게 나누는 일이에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죽도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 우연히 벌어지는 환상이 아니라 
서로을 이해하기 위해 철저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연애예요. 
인생은 헤어짐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알게 모르게 스쳐갔던 인연들과의 만남과 
이별 속에서 또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시 인연으로 이어지고.. 연애라고해서 다를것은 없다. 
지금 당장 미칠듯이 힘든 시간도 어쩌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위한 하나의 절차일뿐.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겠으나 그것이 미련한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만큼 상대방과의 헤어짐에도
어느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를 어떻게 쏟고 식혀 갈 것인가.. 
하나의 방법을 이 책에서 이야기 해주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태어나서 수도 없이 많은 오답을 써. 실연은 살면서 쓰게 되는 대표적인 오답인 거야. 
오답이 대수야? 오답은 그냥 고치면 되는 거야!
 
내게 다가온 실연을 마주하고 그것을 충분히 느끼고 털어낸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된 것이다. 자꾸만 숨기고 감추고 모른척 한다면 
영원히 떠나보낼 수 없을 아픔이기에 어떤 기회든 어떤 방법이든 마주하고 떨쳐내야 할것이다. 
실연에 휩싸여 힘들어하는 고통의 시간이라도 어쨋든 우리의 시간은 흘러가고,
죽지 못해 산다 해도 삶은 계속 지속되기에 과거에 사로잡혀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지금의 나는 열정적이던 젊은 시절의 사랑을 다신 할 수 없겠지만, 
비단 연애로써의 사랑뿐만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 전체에서 
마주하게 될 이별의 슬픔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에 대한 슬픔이던 같은 기운을 나누고 떨쳐 낸다는것, 
비록 너무 이른 아침 7시 조찬 모임일지라도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의 
동병상련의 동지를 만나게 된다면 조금의 위안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마다 사람은 도리 없이 어른이 된다. 
시간이 흘러 들리지 않는 것의 바깥과 안을 모두 보게 되는 것. 
사강은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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