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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거짓된 삶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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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엔 막연하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되면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어른의 삶이란 더 고달프고 힘들기만 하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열망, 청소년기의 치기 어린 반항심이 나를 더 빨리 어른으로 만들어 버린건 아닐까. 그래서 가끔은 한정된 세계 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원하고 바라던 청소년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그때 내가 이런 선택을 했다면, 이런 생각과 행동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별거 아닌 일로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이 고뇌하고 힘들어했던 내게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이야기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의 나는 그렇게나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나 그때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
부모님의 입에서 절제된 목소리로 국어책을 읽는 듯한 완벽한 문장들이 나오는 순간이면, 단어 이면에 또 다른 진실을 품고 있는 부모님의 대화에서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면 나는 몰래 빅토리아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기로 약속했다.
<어른들의 거짓된 삶> 속의 조반나에게도 그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그때는 다들 혼란스럽고, 힘들다고. 나는 내 삶을 살아가면 된다고. 말해줄 수 없기에 더 안타깝고 또 나역시 그랬기에 더 이해할 수 있다.
행복해 보이는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평범한 13세 소녀 조반나가 순수했던 소녀에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어가며 하나둘 알아가게 되는 어른들의 삶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사춘기를 겪어 본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의 널뛰는 감정,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불만, 또래 집단에서의 갈등,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등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너무나 적나라하고 또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영원히 행복하게 지속될 것 같던 가족의 분열,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떠나버린 아버지에게 집착하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기도 하지만 그로인해 다시 또 이해하고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분별력 있는 그들의 머릿속과 지식으로 가득한 그들의 몸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파충류보다도 못한 믿을 수 없는 동물로 만들어버린 걸까.
내가 모난 성격이라는 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못된 말을 하고 못된 행동을 했다. 온실 안의 화초 같은 한심한 계집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착한 마음을 억누르는 면도 없잖아 있었다. 나는 구원의 길을 찾고도 그 길로 가지 못하거나 스스로 그 길을 걸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지금 사춘기를 앓고 있는 소녀만큼, 아니 그보다 더 그 시기를 겪는 소녀의 마음을 잘 드러내주는 이 소설은 어른들의 거짓과 위선을 겪으며 자신 또한 어른이 되어 가고 성장하는 모습을 서서히 그려내며 주인공 조반나와 함께 나역시 사춘기 소녀의 몸과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맞아, 나도 그땐 저런 생각을 가졌었고 저런 상상을 하곤 했었는데하며 힘들었지만 또 그만큼 아련하기도 했던 그 시절이 계속 책 속의 조반나와 겹쳐졌던 것 같다. 치밀하게 그려지는 조반나의 생각들, 페란테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가 바로 그런 부분이라는 것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느낄 수 있었다. 어른들이 끊임없이 하는 거짓말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나 역시 거짓을 꾸미고 부풀리며 느끼게 되는 희열들을 뿌리치지 못하며 그렇게 또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 어른이 되면 어른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미 어른이 된 나도 아직 그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웠던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며 어찌보면 무모하고 어두운 방황의 시기를 아름답게 그려낸 소설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그 시절을 자꾸만 떠올리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랬던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내가 하고 있는 수많은 거짓들을 되돌아보며 나역시 그런 어른이 되었다는 씁쓸함 또한 느꼈던 소설이었다.
거짓말, 거짓말. 어른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