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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화창한 중년입니다
사카이 준코 지음, 이민영 옮김 / 살림 / 2018년 4월
평점 :
새해가 되면 내 나이를 체감하게 된다. 사실 평상시엔 나이에 대한 자각을 많이 하지 않지만, 새해엔 한 살 또 더해진 새로운 나이에 어색하기도 하고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느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중년이라는 나이가 항상 내게는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내게도 이제 중년이라는 나이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깨닫게 되는 새해엔 그래서 조금은 서글프고 우울해 지기도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봐도 그 숫자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 그래서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 심란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책들이 새해엔 많이 생각나는 것 아닐까. 나는 아직 여유가 조금 있지만, 중년의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만큼 시들지 않고 더욱 활짝 피어나는 중년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호들갑을 떨며 크게 기뻐한다.
조금 더 일찍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나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저자의 40대와 50대의 무르익은 삶을 담고 있다. 사실 중년이라는 말 자체가 품고 있는 통상적인 이미지는 원숙하게 나이 든 시기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중년의 삶은 젊은 시절 많은 것을 처음 경험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롭고 즐거운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거들을 처음으로 입게 되고, 어른들의 세계라 여겨졌던 디너쇼와 오페라를 처음 관람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해외로 여행을 가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 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첫 경험들은 왠지 서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솔직하게 모든 걸 인정하고 또 받아들인다. 모든 것이 낯설고 중년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만큼 서툴지만, 그래도 그녀의 당당함은 그 어떤 나이대보다 아름답다.
가끔 멋을 부리고 외출하고 싶은 욕구는
실로 중년 여성의 욕구 자체가 아닐까?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두고
더 이상 가슴 설레지 않은 우리지만,
멋지게 중년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면서 12월의 밤은 깊어갔다.
하지만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동일본지진에 대한 이야기다. 그 재해로 인해 그녀 역시 큰 충격과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진짜 전쟁이 난 것처럼 슈퍼마켓의 진열대가 텅텅 비고 기나긴 줄을 서서 물건을 사는 경험, 전기를 만들기 위해 세워진 원전으로 인해 후쿠시마 주민들이 겪게 되는 피해를 자신을 탓하며 절전 생활에 돌입하기도 하고, 사고 후 후쿠시마를 찾아 사람들의 삶 속에 들어가 보기도 하는 등. 일본 전 국민들이 모두 함께 겪어야 했던 고통이겠지만 특히나 그녀에겐 중년의 시기에 겪은 가장 큰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로인해 타인을 생각하는 더 큰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이가 드는 것을 거스를 수 없음에도 끊임없이 젊음을 바라고 집착하다 보면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의미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받아 들이고 좀 더 당당해 질 것을 이야기 한다. 나이들어 살이 처지면 어떻고 흰머리가 좀 나면 어떤가.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에 의미를 두지 말고, 새롭게 찾아오는 중년의 첫 경험들을 즐겁게 즐기다 보면 행복한 하루 하루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나이에 연연하지 말자고 새해마다 다짐하곤 하지만 20대 때와는 달리 30대가 되고는 사실 좀 예민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삶이 더 원숙하고 진지하고 지루해질 것이란 편견과 달리 또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니 40대가 된다는 것에 대한 강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녀가 직접 겪어온 중년의 삶을 돌아보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그러니 받아들이고 당당해지라는 것. 겪어 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어쨋든 가장 좋은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그저 지금 주어진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더이상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화창한 중년을 기다릴 수 있는 30대를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발전도 하지만 퇴화도 하는 것,이게 중년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