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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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가족을 잃는 슬픔. 사실 난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가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온다. 강하지 못한 내가 과연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정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에선 자꾸만 그 소중한 시간을 의미 없이 허비해 버리곤 한다. 나중에 분명 후회할걸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아마 더욱 아프겠지..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할 순 없지만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미 이별을 경험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만큼 뼈저리게 와닿는 것도 없을 것이다.

 

 

 

카린과 닮은 부분이라고 해봤자 팔의 움직임이라든가 목소리 정도밖에 없지만, 그래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승강기 안에 카린이 나와 나란히 서 있는 것 같다. 다만 이 카린은 나를 모를 뿐이다.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를 뿐이다.


 

조금 있으면 아이가 태어날 예정인 톰과 카린. 하지만 임신 33주에 카린은 갑작스러운 고열과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가게 된다. 단순한 독감이라 치부했던 증상들이 사실은 급성 백혈병이란 엄청난 진단을 받게 된다. 둘은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는데 말이다. 카린은 죽기 전 아이의 이름을 리비아로 정한다. 아이는 제왕절개로 일찍 세상에 나오게 되고 카린든 집중적인 치료를 받지만 결국 죽게 된다. 아이의 탄생과 아내의 죽음. 그 교차점에서 톰은 많은 혼란을 겪게 되고, 몇개월 뒤엔 계속 아프셨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다.

가장 가까웠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이성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지금의 나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 처럼 실신하고 울부짖고 부정하며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지도 모르겠다. 몇일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함께 영화를 봤던 아내가 갑자기 의식 없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 하지만 톰이 기억하고 회상하는 자신의 모습은 참으로 절제되고 덤덤해 보이기까지 한다. 카린이 죽는 순간을 의사의 사망 선고로 대신 표현하는 그는 오열하거나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고 감상적으로 젖어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 극도의 깊은 상실과 슬픔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저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사실대로 현재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소설임에도 그가 실제로 겪었던 사실이기에 그래서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이제 세상에 없는데. 그것은 의식을 초월한 무.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무심히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시기만 다를 뿐, 우린 언젠가는 모두 이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먼 일로만 느껴지고 그래서 내게 그런 고통이 다가올 것이란 예상은 하지 못한채 살아간다. 톰의 너무나도 상세하고 또 사실적이고 치밀한 그 기억들은 책을 읽는 내내 큰 병원 특유의 냄새와 복잡하게 얽힌 기계들이 즐비한 병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더 소름끼치고 더 아프게 이별의 순간이 다가온다. 하지만 카린의 죽음과 교차되며 태어난 리비아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린의 삶이 리비아에게 그대로 연결되어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란 나름의 희망과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톰의 생각은 그렇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톰을 좀 매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볼 수 있는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니까. 하지만 비록 톰이 요란하게 슬픔을 드러내진 않지만 언뜻 보여지는 카린에 대한 그리움은 그 누구 못지 않게 짙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남은 시간들 속에 떠난 사람의 자리야 절대 완벽하게 메워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서서히 옅어질 수 밖에 없고 톰에게 리비아가 온 것 처럼 새로운 무언가가 다시 그 자리를 채워지며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나는 이 편지와 하나가 된다. 언젠가 리비아도 이 편지와 하나가 될 것이다. 예전에 너와 리비아가 하나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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