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 영원한 내부고발자의 고백
신평 지음 / 새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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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이루는 많은 사람들은 각자 다른 성향과 생각을 가진 모두 다른 존재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집단의식이 강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각자의 가치와 판단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조직에 몸 담는 순간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모두 똑같은 생각과 가치를 주입 받으며 획일화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 자신이 속한 조직에 흠집을 내려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내부고발자들이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큰 고통을 겪게 되는 이유다. 내부고발자들의 고통을 보며 남은 조직원들은 더욱 결속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나갈 수 밖에 없는 내부고발자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 지고, 조직은 그 치부를 더 철저히 감춘채 점점 더 병들어 간다. 게다가 그 뒤에 감춰진 검은 세력들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면 더욱 두려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한편의 소설같은 이야기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사실이라는 것이 더욱 소름 끼치는 일이다. 



도저히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자랑하던 그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나에게 덮쳐오는 거대한 파도가 한 개인의 힘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고 보였다. 무언가 잘 짜놓은 각본에 따른 함정이 파여 있었고, 나는 그 속으로 떨어졌으며, 웬만해서는 혼자 힘으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적지 않은 젊은 법조인과 법학자들은 이 책의 저자를 ‘시대의 사표’라 부른다. 1993년 돈봉투가 오가는 부패한 사법부의 현실을 질타하며 ‘사법부의 정풍’을 주장한 저자는 그 후 가혹한 시련의 길을 걷는다. 현행 헌법 시행 후 최초로 법관 재임명에 탈락한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대법원은 그의 사생활에 관한 거짓의 흑색선전을 퍼뜨리며 앙갚음을 하였고 그로인해 저자와 가족들은 수십 년간에 걸쳐 큰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고초를 겪은 뒤로도 저자는 끊임없이 부조리한 사회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고 비판하였다. 이 책은 경북대 로스쿨 교수로 사법개혁을 주장하고 로스쿨 교수의 비리를 고발하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며 쓴 그 당시의 일기들을 통해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원한 내부고발자’라 불리는 그의 외롭고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 하랴. 떳떳한 태도로 나아가자. 진실은 내게 있다. 나는 절대로 허위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된 후 잠깐의 변호사 생활을 거쳐 경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던 중, 동료 교수의 성매매 비리에 대한 글로 인해 저자는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다. 진실을 말했을 뿐이지만 동료 교수의 그에 대한 공격은 무차별적이다. 성매매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이며 저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말도 안돼는 비방을 하며 궁지에 몰아 넣는다. 법조계에 함께 몸 담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비리와 치부를 들춰내고 개혁을 주장하는 저자는 언제나 눈엣 가시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진실을 말하는 저자의 편에서 그를 옹호해 주는 동료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더욱 똘똘 뭉쳐 배척하고 저자를 몰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검찰은 철저히 동료 교수의 편에서 일방적인 수사를 해나간다. 거짓말 탐지기나 저자가 제출한 증거와 자료는 누락되기 일쑤고 말도 안돼는 상대방의 억측과 거짓말들이 사실인냥 인정되는 것이다. 저자가 그의 뒤에 분명 거대한 세력이 있을 것이란 짐작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모두가 저자를 겨냥하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지만, 판사로 일했고 법조계에서 일하는 저자이기에 재판을 철저히 준비하고 잘 대응해 극적으로 1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지만, 결국 최종적으론 유죄가 되고 교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렇듯 그가 소송에 휘말리고 마지막 선고를 받기까지의 과정들이 일기 형식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진다. 너무나도 불공평한 세상을 마주하며 저자가 해나가는 싸움은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그는 신앙과 가족의 힘으로 굳건히 버텨낸다. 그래서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개인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안이한 분석으론 결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의 사법부나 법조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결함은 이런 부정을 항시 생겨나게 할 소지를 안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또 바깥으로 터져 나오건 그렇지 않건 간에 여전히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생겨나고 있다고 보면 확실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고, 비리를 고발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힘든 싸움을 해나가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용기를 내기 두렵다. 대부분의 내부고발자들은 돈과 명예만 잃는 것이 아니라 건강까지 잃게 되고 결국 폐인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판사,변호사,로스쿨 교수를 거치고,거기에다 감사원장, 대법관으로 천거가 되고, 대한민국법률대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소위 말해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일지라도 조직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짓밟혀진다는 것은 만약 우리 일반 서민들이 그런 조직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경우를 생각하는 것은 소름이 끼칠정도로 무섭다. 이미 너무나 많은 이익과 권리를 누리고 있음에도 그것을 놓치 않기 위해 양심을 버리고 교활하고 비겁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 그들의 모습에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아마 저자가 적절히 타협하고 넘어갔다면 훨씬 더 높은 위치와 더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른척 넘어가라고 조언했지만 그는 그 조언을 무시했다.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했고, 학자로서의 자존심이 비겁한 행위를 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했다. 분명히 더 쉬운 길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과 생각대로 행동했다. 공공연히 행해져 온 관례들과 조직의 이익에 반하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는 사법부,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세력의 힘을 느끼며 마주했을 저자의 두려움이 일기의 형식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각자가 힘든 순간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저자는 신앙과 가족들을 버팀목으로 이겨낸다. 물론 그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보단 훨씬 유리하게 소송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원한 내부고발자’라 불리는 그이기에 그런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겐 작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높은 위치에 이른 사람도 권력기관 앞에선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은 항상 강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지만, 분명 우리들의 편에서 또 진실의 편에서 공정한 법의 수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는 것을 저자를 보며 알 수 있었다. 나라면 도저히 내지 못했을 용기,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지켜나가는 모습에서 그와 같은 양심적인 내부고발자들이 좀 더 보호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해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정을 힘겹게 달려온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갖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기득권 구조를 청산하고 어느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판사로서, 변호사로서, 그리고 로스쿨 교수로서 그러한 사회를 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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