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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일라나 쿠르샨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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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들이 있다. 너무나 다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지만, 지금 읽어도 감동적이고 공감되는 것들은 아마 먼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유대인들의 지혜가 담긴 탈무드이다. 내용은 모르더라도 탈무드라는 제목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유대교에 대해서도, 탈무드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절망 앞에 선 한 여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져, 그 순간에 왜 여자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탈무드를 들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한 챕터에서 다음 챕터로 넘어가고, 그다음으로 넘어가면 곧 주석집 한 권을 다 읽게 되리라. 이것은 시간을 나이 드는 흔적으로 보지 않고 지혜를 키울 기회로 보는 관점이었다. 그러니 시간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법이었다. 매일 한 장씩 익히면, 하루 더 나이 들었다고 체념하는 대신 하루 더 지혜로워졌다고 위안 삼을 수 있었다. 결국 이것이 유대인이 시간을 보는 관점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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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나 쿠르샨은 하버드대와 케임브리지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과 예루살렘의 출판계에서 번역자, 외국어 판권 담당자로 활동하는 달리기를 하고 책과 텍스트를 사랑하는 낭만적인 사람이다.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것을 계기로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를 쓰기 시작했으며, 이 책의 핵심인 탈무드 프로젝트 ‘다프 요미’를 따라 자신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될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기를 바라며 지금은 남편, 네 아이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다. 7년 반이란 긴 시간동안 탈무드를 공부한 그녀는 시간의 흐름처럼 탈무드를 읽어나가며 순차적으로 찾아오는 절망과 사랑, 상실을 어떻게 극복해내게 되었는지를 이 책에 솔직하게 담아냈다.
내가 텍스트를 좇아가는 게 아니라, 텍스트가 내 삶의 굽이굽이를 따라온 느낌이 든다. 유독 힘든 시기,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몰랐던 시절, 매일의 탈무드 공부는 구명정까진 아니어도 닻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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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결혼을 하며 미국에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으로 오게되지만, 1년여의 짧은 결혼 생활은 고통만을 남긴채 끝나게 된다. 친구와 함께 조깅을 하다 하루 한장 씩 탈무드를 공부하며 도전의 짜릿함을 맛보고 불가능한 목표를 정해 천천히 실현해 나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자신도 탈무드를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다프 요미’란 매일 한 쪽이란 히브리어로 매일 한 장씩 탈무드를 공부하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이혼 후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그후로 어디든 탈무드를 가지고 다니고 탈무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조금씩 깨달으며 그녀의 삶 또한 서서히 바뀌게 된다. 탈무드가 비록 남성중심의 사고를 내비치며 페미니스트인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한장 한장 읽어나가는 탈무드를 통해 한발 더 나아가는 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번째 결혼의 실패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던 그녀지만 7년 반 후 탈무드를 완독할 무렵의 그녀는 재혼해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다. 자신의 인생을 확신할 수 없을 때 만나게 된 탈무드는 그녀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의지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용기 내서 영혼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토라 본문이 울리게 해야 한다. 그 구절이 내 영혼을 빛나게 하고, 그 답으로 내 영혼이 본문을 빛나게 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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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명문대를 나와 좋은 회사에 다니는 소위 엘리트 였지만, 사랑을 좇아 머나먼 땅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 사랑이 1년이 채 못가 깨지며 그녀는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그 절망 속에서 만나게 된 탈무드를 통해 그녀가 다시 온전한 사랑을 찾아가고 행복을 찾아가게 된 회고록과도 같은 이 책은 탈무드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고 비록 유대교가 어떤 것인지, 유대인들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한 인간이 배움을 통해 찾아가는 삶의 길을 함께 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꼭 페미니스트까진 아니더라도 여성들이 읽는다면 특히 더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다수이지만 성별에 상관없이 탈무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 이야기를 어떻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내 삶에 녹여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느낄 수 있다. 그저 탈무드란 무엇이고 어떤 내용이라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탈무드의 그 구절, 그 챕터를 읽던 시기의 자신의 상황과 생각들이 그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변화하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기에 어렵지 않고 그녀의 삶에 함께 동화되어 탈무드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우여곡절 많았던 그녀의 인생 속에서 탈무드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그래서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받았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계속 토라와 함께하면서 그 비밀들을 찾으려 애쓴다. 밝힐 수 있는 것을 밝히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얻고 싶다. 그 길이 어둡고 고달플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