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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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것에는 죄책감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일을 하면서도 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놀고 있다면 즐겁게 놀아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그 바탕에 깔린 죄책감이 한쪽 구석에 자리잡아 끊임없이 나를 책망하며 몸은 쉬어도 마음은 불편한, 이도저도 아닌 시간을 보내게 한다. 그 불편함은 끈질기게 남아 나를 괴롭히지만 무시한채 챗바퀴 도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번아웃 상태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유 없는 통증과 극도의 우울 상태가 되고서야 나 자신을 돌보게 되는 지금의 우리에게 어쩌면 누군가는 쉬어도 된다고, 나에게 관대해지라고 이야기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몸과 마음, 기분과 생각을 스스로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도, 그안에 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는 나니까. 잘 지내든 그렇지 않단 나는 나와 평생 같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십여 년 동안 TV 코미디 작가로 일했고, 십 년 남짓 에세이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는 2017년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하게 되었다. 지혜로운 사람보다 유연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보다 게으른 사람에게 끌리지만 정작 자신은 지혜에 집착하고 쓸데없이 부지런한 타입이라 난감할 따름이지만 그런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날이 대부분일지라도, 스스로에게 정 붙이는 연습을 하며 사는 중이다. 이유없는 손가락 통증으로 무기한의 강제적 휴가를 갖게 된 저자는 쉬는 법을 몰랐다. 일중독자인 그에게 아무 죄책감 없이 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년을 억지로 쉬는 동안 조금씩 쉬는 것에 익숙해지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과정속에서 자신을 받아들이고 돌보는 일의 중요성을 느꼈고, 그런 변화하는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이야기한다. 자신을 몰아세우며 조바심 내고 전전긍긍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관계에 상처받는, 현대인이라면 자신과 같은 상황이라며 격하게 공감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저자 역시 일중독에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쉬는 동안 자신을 가장 괴롭히고 몰아세우는 것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을 잘 돌보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을 돌볼 여유를 가질 수 없었고 그로인해 관계에 트러블이 생기게 된 것이다. 스스로 독립한 한명의 어른이라 생각했기에 강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위로와 칭찬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반성이 아니라 자기연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고, 내 편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기 자신이야말로 끝까지 자기편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너무나 인색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변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나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게 아닐까. 사실은 그 모습을 인정하고, 또 인정받고 싶었으면서도.


 

 

바쁘게 살다보면 가장 뒤로 밀려나는 것이 나 자신이다. 가족,친구,동료들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는 것에는 소홀해지기 쉽고, 그렇다보면 금새 지치게 된다. 재충전의 시간이 분명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의미 없는 휴식이 진정한 휴식이 될리가 없다. 그래서 쉬고 또 쉬어도 끊임없이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나를 아끼기 위한, 나를 위한 게으름과 널부러짐은 죄책감이 없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소파에 누워 한없이 빈둥거리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멍하니 누워 있는 것이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인생에 우선순위가 되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에, 단지 내가 느끼는 그 당시의 감정과 기분에 집중하여 선택할 수 있다. 상처를 드러낼수록 더 빨리 낫고, 감추면 감출수록 더디게 낫듯이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상처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는 내가 되다보면 어느순간 더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진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살면서 분명 나는 점점 더 약해지고 더 많은 세월의 풍파를 맞이하겠지만, 그런 흐름조차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삶 또한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나역시 항상 정당하게 쉬면서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어정쩡한 불안과 죄책감을 이제는 그래도 털어내고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었던 책이었던 것 같다. 



마음은 액체다. 가고 싶은 대로 흐른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가 역행하기도 하고 넘치기도, 말라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당장이라도 데일 듯 뜨겁다가 한순간에 얼어붙기도 한다. 그렇게 어디로 갈지, 어떻게 될지 모를 마음의 흐름을 간수하는 방법은 딱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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