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 소속감을 느낄 때 좀 더 안정을 느끼고 자신이 존재함을 느끼곤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고독과 고통을 직접 느껴본 적은 없다. 난 평생을 태어나고 자란 곳에 소속되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스스로 택한 것이든, 불가피한 선택이었든 어쨋든 그 소속감을 박차고 나간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언어, 다른 외모, 다른 문화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녹아들지만 그래도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순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어디에도 완벽히 소속되지 못한채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는 것을 느낄 때, 모호한 자신의 정체성을 마주하며 혼란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아마 그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을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가장 잘 드러낸 소설, 그것이 바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다. 



모든 것이 흐릿한 가운데 그녀의 의식만이 분명했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그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딱히 공간성도 시간성도 없는 원초적인 그리움 같은 게 뭉실뭉실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 저자는 서울에서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다 1985년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2004년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언제부턴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2013년 <당신의 파라다이스>로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저자의 이전 소설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저자가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았기에 그 상황들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소설에 모두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왜 한국에서 글을 쓰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그녀는 생존의 언어였던 영어와 달리 자신이 진짜 사유하고 있던 언어는 한국어였고, 그 두 언어간의 미묘한 차이에서 오는 많은 것들을 통해 소설을 쓸 수 있는 힘을 받았다고 한다. 

 

9개의 단편소설들로 채워진 소설집은 모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 경계에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히어 앤 데어’에서 동희는 미국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사람들은 왜 떠났던 한국에 다시 돌아온거냐고 묻지만 동희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천천히 초록’에서의 나 역시 자신의 뿌리를 찾아 온 한국에서 부모의 흔적을 되짚으며 자신이 느끼는 불안을 해결하고자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에서의 폴 역시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살아가지만 부모로부터 받은 동양계 외모로 미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며, 한국에서 역시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라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모호한 위치에 있다. 반면 ‘분홍에 대하여’의 세레나는 남편과 헤어진 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미국으로 갔다. 그녀에게 언어는 단순한 대화의 수단이 아닌 사랑을 나누고 교감하는 주요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역시 ‘압시드’를 보면 미국으로 입양을 가며 ‘ABCD’ 라는 특이한 이름을 갖게 된 주인공이 이름으로 놀림을 받으며 그 이름을 버리고 싶어하지만 그 이름이 자신의 생부가 아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지어준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그 이름에서 큰 위안을 얻는 것처럼, ‘라스트 북스토어’의 주인공 역시 미국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판소리 LP를 발견하고 한국인을 만나며 느끼게 되는 위안은 한국을 떠나와도 한국이라는 것이 가져다 주고 상징하는 것은 쉬이 지워지고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사의 연못’과 ‘로드’에서는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이민자의 삶이 놓치고 있는 것,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중 ‘동국’은 한국에 사는 미국인이나 미국에 사는 한국인과 같은 비슷한 맥락의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한국에 사는 한국인 동국의 인생과 그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뭔가 함께 섞이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있음에도 동국의 인생은 그 누구보다 힘들고 고통스럽다. 여타 가족들의 도움도 받지 못한채 홀로 감당하는 그녀지만 결국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동국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장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익숙한 것에 몸과 마음을 기대고 의지한 채 살아온 것만 같았다. 익숙한 게 막연히 진실이라고 여겼고 익숙하지 않은 걸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세상은 언젠가 스스로 가야 할 곳으로 갈 거라는 바람을 희망이라고 오인했다.


 

 

 

사실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도 외로울 수 있고 먼 타국에 있어도 그 나라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 속에 녹아들어 살아간다 해도 본능적인 이끌림이라는 것이 있는 것 아닐까. 큰 도시에 가면 한인타운이 있기 마련이고 어릴때 입양을 가도 성인이 되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부모를 찾고자 하는, 끊임없이 한국적인 것을 찾고 교감하려 노력하게 되니 말이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하고 혼란스러움을 느낄 땐, 아마 자신의 근원을 찾게 되면 어느정도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을 찾지 못하더라도, 찾아가는 그 과정만으로도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속하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나라는 가장 중요한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내가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 누구보다 그들의 삶과 고통을 잘 알고 있을 저자이기에,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위로하고 애도할 수 있음을 이 소설을 통해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것이 어른거렸지만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 없어 답답한 사람들 같았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몸은 자라 어른이 되었는데 어느 부분은 여전히 자라지 않은 채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때로는 분명한 것도 희미해졌고 희미한 것들 사이에서 날카롭게 빛을 반짝이는 것이 있어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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