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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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대해 큰 신뢰를 가지고 있진 않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정경유착이나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시민의 안전과 보호보다는 자신들만의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우리가 기득권들에게서 받는 실망감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늑대가 피 비린내를 맡고 흥분하며 이빨을 드러내듯, 돈이나 권력의 냄새를 맡고 흥분하며 달려드는 부패한 경찰들의 모습을 영화에서 너무 실감나게 자주 마주쳤기에 그런걸까. 아니면 더욱 잔혹한 현실세계에서 마주칠 수 있는 섬뜩한 우리들의 이야기 때문일까. 정의가 무엇이고 불의가 무엇인지, 선과 악이 불분명한 뒤죽박죽 세상에선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군도 없는 그저 진실만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검은 개도 흰 개도 모두 개다.



 

 

저자는 2007년 야마가타신문에서 주최하는 ‘야마신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2008년 <임상 진리>로 제7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하면서 마흔 살의 나이에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어린 시절 셜록 홈스를 읽으며 소설에 눈뜨고, 지역 생활정보지에서 취재 기자로 활동하다가 문예평론가 이케가미 후유키의 강좌를 수강한 것이 계기가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세계에 관해 쓰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대로 2015년 작가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맞게 해준 <고독한 늑대의 피>를 발표하고 제69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았다. 


구레하라 동부서 수사 2과의 폭력단계 반장 오가미는 경찰 표창이 100회가 넘지만 그에 반해 징계 처분도 최고인 묘한 인물이다. 언뜻 보면 형사인지 야쿠자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다. 그래서 야쿠자와의 유착 관계를 의심 받는 오가미와 함께 일하게된 히오카는 히로시마 대학교를 졸업한 이른바 ‘학사님’인 정의와 원칙을 중요시하는 햇병아리 경찰이다. 처음부터 히오카는 오가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사 과정에서 폭력, 금품갈취,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 오가미는 말한다. ‘야쿠자를 이해하려면 그들처럼 불합리한 세계에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러던 중 구레하라의 가코무라구미라는 폭력단계 불법 금융회사의 경리로 일하던 우에사와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단순한 가출이 아니라는 것을 오가미는 직감한다. 가재도구도 그대로 두고 야반도주 하듯 종적을 감춘 것과 가코무라구미가 혈안이 되어 우에사와를 찾고 있다는 것은 분명 단순한 가출이나 도주가 아닌 것이다. 우에사와의 실종으로 시작되어 서서히 드러나는 가코무라구미와 오다니구미의 세력 다툼이 개입된 총격전과 의문의 죽음들은 점점 늘어나 서로간 항쟁으로 번질 위험에 다다른다. 그와 함께 뒤늦게 14년 전 미결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오가미가 지목되고 그동안 야쿠자와의 유착 관계로 의심 받던 오가미에게 위기가 찾아 오게 되는데...



수사에 대한 오가미의 열정 앞에서는 머리가 숙여지지만, 그 모습은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굶주린 늑대 같았다.

 

 

 

일본의 경찰과 야쿠자간의 대결이라는 소재는 강렬하지만 신선하지는 않다. 일본이 아닐지라도 한국의 느와르나 경찰 하드보일드를 표방하는 많은 영화들에서도 조폭과 경찰의 대립 구도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소재를 속도감 있고 정교하게 그려내며 그 안에서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진 개성이 살아있고 유머와 감동도 섞여 있어 읽는 내내 손에서 놓치 못하고 휘몰아치게 읽게 만드는 몰입감을 안겨 준다. 여성 작가가 소위 남자의 세계라고 일컬어지는 야쿠자의 세계를 써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아마 미리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필히 남성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박력이 넘친다. 주인공인 오가미는 사실 처음엔 그저 사건 해결을 위해 제멋대로인 위압적인 인물 같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가진 상처와 정의를 지켜내기 위한 진심이 드러나며 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히오카가 오가미를 통해 성장하고 결국엔 오가미의 뒤를 이어 진짜 경찰이 되어가는 모습 또한 흥미롭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반전에 흠칫 놀라게도 해주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소재임에도 푹 빠져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어른이 되어보니 정의라는 것을 확신하지도, 또 희망하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에 불의가 넘쳐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희망을 바라지 않을 때쯤 영웅처럼 짠하고 정의로운 누군가가 나타나 질서를 바로 잡아줄 때,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 하다며 위안을 얻곤 한다. 비록 그 과정이 석연치 않더라도 오가미는 자신이 확신하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는 우직함, 거기에 누군가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까지 실제 그런 경찰들을 많이 만나보진 못했지만 분명 그런 사람들이 이 사회에도 많이 존재할 것이다. 내가 믿고 있는 정의도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가끔은 냉혹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 



법률은 사적 처벌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법률이 가네무라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다면 정의는 어떻게 되겠는가? 살해를 저지른 아키코와 살해를 당한 가네무라, 실체적 정의는 어느 쪽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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