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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의 죽음 ㅣ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2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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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은 줄줄 흐르고 모든 것에 무기력해지는, 책 한권 읽기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요즘이다. 이럴땐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딱이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의 책은 오히려 모아둔 기를 다시 독서로 쏟아내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는 지친 여름 활기를 돋게 해주는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기에 부담없이 책장을 펼칠 수 있다. 무사태평하고 유유자적하는 작은 마을 로흐두의 유일한 공권력인 해미시가 이번엔 또 어떤 살인 사건을 맡아 해결할지 기대하며..
그는 질서를 유지하네. 게으르고 비정통적인 방식을 사용하기는 해도 늘 결과를 얻어 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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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대의 작은 마을 로흐두에 최근 이주해 온 랜디 두건으로 인해 마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는 거구의 허풍선이로 마을 술집을 장악해 매일 공짜 술을 돌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 하지만 점점 심해지는 그의 모욕적인 발언과 과격한 행동으로 마을 사람들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왜소한 노인인 조르디가 랜디와 맞서다 위기에 처하고 그를 저지하던 해미시는 랜디와 결투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결투 당일 랜디는 자신의 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로인해 해미시는 해고의 위기에 놓이고 살인사건 수사에서도 배제된다. 그러나 그저 두고 볼 해미시가 아니다. 독자적으로 탐문해 나가던 중 해미시 역시 살인의 목표물이 되는데..
해미시는 다시 음울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왜, 아니, 왜, 그는 랜디의 그 멍청한 도전을 받아들였던 걸까? 그는 사건에 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랜디는 허풍선이에 협박을 일삼던 자였다. 그러니 마을 사람치고 그를 애도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해미시는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자책감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대체 뭐 이런 경찰이 다 있단 말인가?
작은 시골 마을에선 소문이 빨리 퍼지기 마련이다. 한집 건너 모두 아는 사이에 무료한 생활에서 살인사건은 모두의 입을 바쁘게 만들어 줄 큰 이벤트와 다름 없다. 로흐두에 흘러 들어와 정착한 외지인들로 인해 마을은 시끄러워지고 결국 랜디 두건과 또다른 외지인인 로지 드랄리 역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해미시 역시 풀리지 않는 살인범의 정체가 마을 사람이 아니길 간절히 빌게 된다. 여기서 다시 그의 직감과 촉이 발동되고 모두가 해결되었다고 믿었고 그로인해 빨리 평화를 되찾고 싶었던 마을 사람들과 달리 해미시는 끝까지 진범의 존재를 쫓아 수사한다. 다른 일엔 젬병인 그지만 역시 살인사건과 관련해서는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제가 스트래스베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마을의 사소한 범죄에는 설렁설렁 넘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살인 사건은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어야만 하는 범죄예요. 그리고 정의는 편리하게 자백을 해 버리는 사람에겐 절대 찾아가지 않는 법입니다. 전 계속해서 사건을 파헤칠 겁니다. 어르신, 진범을 찾을 때까지요. 진범은 누구라도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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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에선 해미시와 파혼한 약혼녀 프리실라의 활약 또한 돋보인다. 헤어진 연인 사이에 앙금이 남은 사이임에도 서로를 걱정하고 도와주며 밀당하는 둘 사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로를 의심하고 끝까지 사건을 들쑤시고 다니는 해미시를 마을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그래도 결국 해미시가 해고 위기에 놓이자 해미시를 지키기위해 발 벗고 나서는, 로흐두 마을의 유일한, 그들만의 해미시는 확실히 중요한 존재이다. 살인사건에 특화된 그의 능력이 이번편에서도 빛을 발하지만 그외의 모든 일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허점투성이의 그는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다. 사실 제목을 보면 누가 죽게 될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캐릭터 하나하나를 입체적으로 그리고 신랄한 블랙코미디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기에 몰입해서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해매시가 로흐두의 경찰관으로 있는한 스코틀랜드의 나른하고 아름다운 마을 로흐두는 해미시로 인해 살인마을이라는 스펙터클한 장소로 변해가지 않을까.
처음으로 그는 경찰이 자신에게 맞는 직업인지 궁금했다. 무슨 일이든 혼자서 끝장을 보려고 하는 자신의 황소고집은 훌륭한 경찰관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사랑하는 삶의 방식이자, 지금껏 살아온 방식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