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미니북)
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민준 옮김 / 자화상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문득 눈을 떴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린시절엔 부러운 존재나 닮고 싶었던 사람으로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은 있다. 고통 없이 그저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내가 바라던 삶이 펼쳐진다면 과연 행복할까, 아니면 그래도 슬프고 괴로울까. 이런저런 망상을 해보지만 실제 겪어보지 않고는 그 기분을 알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가느다란 다리에 딱딱한 등을 가진 벌레로 변해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밤낮없이 일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 새벽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외판원으로 힘들지만 가족들의 삶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사명감으로 일해왔다. 하지만 어느날 잠에서 깼을 때 그는 벌레로 변해 있었다. 출근은 고사하고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든 벌레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레고르를 마주한 부모님과 여동생은 막막하다. 그레고르에게 기대어 넓은 집과 여유로운 생활을 하던 가족들은 결국 다시 일터로 내몰리게 된다. 지치고 힘든 몸은 점점 그들의 정신마저 한계로 내몰게 되고, 더이상 그레고르를 보살피지 않게 된 가족들을 뒤로하고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져 등에 박힌 사과가 썩으며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레고르의 죽음에 가족들은 슬퍼하기는 커녕 해방감을 느끼며 그레고르가 없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에 부푼다. 



그레고르는 중얼거렸고, 그의 앞에 펼쳐진 어둠을 바라보다가 문득 부모님과 여동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애쓴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이 모든 평안함과 유복함 그리고 만족스런 생활이 자신에게 닥친 끔찍한 일로 인해 종말을 고하게 된다면 어찌될까?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생전엔 작가로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유언으로 자신의 작품을 모두 파기해 달라고 했지만 유언 집행인이자 친구는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표했다. 그 결과로 카프카의 작품은 세상에 빛을 보게 되고 카뮈,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일컬어 지게 된다. 생전 아버지와의 갈등이 많았던 카프카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100장이 넘은 편지로 남기기도 했다니 아버지는 그의 세계관이 형성되고 변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투영되어 있다.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돌봐주는 것은 여동생이다. 아무리 자식이 벌레로 변했다고 한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모라면 그럼에도 자식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레고르의 부모는 그를 철저히 외면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카프카가 가진 부모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레고르는 점점 사람으로서의 삶을 잃어간다. 할 수 있는 것은 방안을 여기저기 기어다니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레고르로 인해 나머지 가족들은 새로운 삶을 찾게 된다. 나태하고 놀기만 하던 가족들은 일을 하고 변화된 삶에 적응하며 새로운 시작을 하고자 한다. 아무리 벌레로 변했지만 이때까지 집안을 먹여 살린 그레고르는 돈을 벌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존재의 이유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집안의 가장으로 돈 벌고 일하느라 가족들과 서먹하고 거리감을 느끼는 쓸쓸한 우리 아버지들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밖에도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유대인으로 동생들이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며 힘든 삶을 살았던 생의 우울함과 고통은 어둡고 고독함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속에서 인간 존재의 불완정성과 사회의 부조리함으로 표현된다. 

 

 

 

가장 유명한 <변신> 외의 단편들도 마찬가지로 음울하고 절망스럽다. 굉장히 짧은 분량의 단편들이지만 그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카프카의 삶의 환경과 일대기를 알게되면 왜 이런 작품들을 쓰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시골의사>에서 선의를 베푸는 의사에게 내려지는 가혹한 결과는 카프카가 살았던 비인간적인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판결>에서는 아버지에게 절대적으로 순응하며 무력해진 자신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좌절하는 모습은 카프카와 아버지 사이와 비슷해 보인다. <법 앞에서>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것은 아니며 죽음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그 상황 역시 카프카가 힘든 시간을 보내며 수없이 겪었을 비참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카프카의 소설은 우울하고 충격적이고 회의감으로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강한 무언가를 담고 있다. 100년이라는 긴 시간으로 인한 괴리감보다 지금 우리 시대에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은 고전이 가지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청소를 하다 배를 보이며 뒤집어 죽어 있는 벌레 한마리에 자꾸만 마음이 씁쓸해 진다. 



슬프면서도 역겨운 그레고르의 현재모습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가 가족의 구성원이었다는 것을 겨우 기억해 낸 듯했다. 그를 적처럼 취급하가나 배척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이 가족의 의무이고, 결국에는 그의 ‘존재 자체’를 참아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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