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문학자의 걷기 예찬
아널드 홀테인 지음, 성립 그림, 서영찬 옮김 / 프로젝트A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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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내뿜는 상쾌하고도 깨끗한 공기, 바람이 불어 소리내는 나뭇잎 흩날리는 소리, 걸을때 느껴지는 흙의 보드라운 촉감. 그리고 시선을 돌려 위를 바라보면 초록 나무 사이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 미세먼지와 소음공해로 가득한 도시에서 늘 그리운 것들이다. 목적지 없이 그저 걷다 보면 어지럽던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또 힘겹게 느껴지던 일들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는, 자연과 걷기의 시너지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그렇기에 도시에서도 둘레길을 조성하여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 



회반죽이 덧칠된 천장과 카펫이 깔린 바닥, 벽지가 발라진 사면의 벽 안에 갇혀 있는 당신은 구름이 덧칠된 하늘을 결코 알지 못한다. 머리 위에서 지평선까지 무한대로 뻗은 그 하늘을 보며 내가 알게 된 것을 당신은 알 리 없다. 


 

 

 

저자는 19세기와 20세기를 걸쳐 살며 신화, 문학, 음악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자연을 사색한 인문학자였다. 아마 그 바탕엔 영국군 장교인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을 인도에서 보낸 것이 사색을 즐기는데 큰 영향을 줬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는 36권의 책을 남겼음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다. 이 책은 1903~1904년 미국에서 발행된 잡지에 연재된 글을 묶은 것으로 자연에서 걷고 사색하며 느끼고 깨달은 것들이 담겨 있다. 사실 꽤 오래전에 쓰인 책임에도 지금 우리에게 유행하는 자연과 함께 걷기에 대한 중요성과 의미를 이야기하기에 큰 괴리감 없이 다가온다. 아마 저자가 살았던 시기에 걷기란 별다른 의미 없는 행위였을 것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걷기란 그저 일상의 한부분일뿐 그것이 운동이나 여가생활로서 인식되지 않았을 텐데 저자는 걷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발견한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그저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함께 걷고 그 걷기속에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고 삶에 대해 사색하는 자세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방대함과 숭고함을 마주하며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렇기에 평소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풀 한포기, 이름모를 벌레 한마리에도 감탄하며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는 저자의 걷기는 그저 두 발로 딸을 딛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세상을 향해 내딛는 행위인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유행인 둘레길이나 제주의 올레길, 트래킹이 그저 자연의 경치를 즐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많은 변화와 발전을 겪으며 잊고 지냈던 것들을 다시금 찾아가고 있지만 저자는 그전에 이미 걷기를 통해 깨달음의 길을 찾고 자신의 삶을 넘어선 자연과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으로까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곧잘 무한대로 변화무쌍한 이 세계를 우리집, 우리 서식지, 우리 것이라 부른다. 또한 이 세계에서 우리는 주인이나 영주 노릇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계가 결국은 진정한 대영주가 관할하는 영지의 코딱지만 한 땅뙈기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주 간과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고, 도시의 편리함과 익숙함에 물들어 시골과 자연이 낯설기만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일상이기에 하루에 걷는 시간은 길지 않다. 운동 삼아 억지로 걸을때도 있지만 자연을 벗삼아 걸을 환경은 되지도 않거니와 마음에서 우러나 사색하며 걸었던 기억은 최근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젊은시절엔 가끔 등산을 하면 좋은 공기와 눈이 정화되는 초록잎을 가득 보며 싱그러운 기운을 느끼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갈 수 없으니 정말 자연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는동안 저자가 걷기를 통해 만난 자연의 모습이 아름답고도 서정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그것만으로도 눈앞에 그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기도 했다. 게다가 저자는 그 길에서 작은 풀 한포기, 벌레 한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위대한 자연과 나아가 우주의 의미까지 생각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가 얼마나 걷기를 사랑했고 그로인해 자연의 숭고함을 예찬하게 되고 자연과의 내밀한 만남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실 도시에서 살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그런 환경에서 자신의 생각을 비우고 깊은 사색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억지로라도 그런 환경속으로 들어가 비우고,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몸으로 하는 산책이지만 사실 그로인해 자신의 마음을 산책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이어지기에 저자가 살았던 그 시대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던 시대나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게 살다보면 많은 것을 놓치고, 또 자만하며 살아갈 때가 많다. 그럴때 자연과 함께 걸으며 자신 역시 자연 앞에 미약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한 인간일 뿐이라는 겸손함을 마주한다면, 인생을 좀 더 소중하고 더 가치있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이른 아침의 걷기는 금세 끝나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날 아침 걸었던 길을 쾌청한 하늘 아래 걸었던 수많은 다른 길과 결코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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