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괜찮지 않았던 날들
허윤정 지음 / 자화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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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이들과 대화하다보면 그 천진난만한 솔직함에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른이 되고서는 내 마음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누군가에 털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매번 느끼기에 아이들의 악의없는 그 순수함이 한편으론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난 분명히 힘들고 아프지만 그것을 숨기고 괜찮다고 말하는 그 씁쓸함은 입안 가득 남아 두고두고 날 괴롭히곤 한다. 실은 괜찮지 않음에도 괜찮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쌓이고 쌓여 벗겨낼 수 없는 묵은 먼지처럼 되어버린다면, 마음 한켠의 응어리로 자리잡아 스스로를 점점 더 가둬버릴지도 모른다. 



상상 속의 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의연한
사람이었지만, 현실은 무척이나 달랐다. 
그 괴리감이 한 번 더 나를 무너뜨린다.

 

 

 

 

매 순간 기록하는 일을 사랑하고 더 많은 순간의 감정을 적고, 나누고 싶다는 저자의 글에서는 힘들었던 시간의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 견뎌내고 이겨낸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이어가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결실을 맺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세상을 살아가며 나 자신을 스스로 지켜내고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나간 일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그동안 타인으로 인해 나를 혹사시킨 날들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연인이든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이든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 힘든것도 아픈것도 그저 괜찮다며, 내가 참고 넘기면 된다며 힘겹게 이어나가던 의미없던 인연의 끈에 미련을 가지지 말고 가차없이 잘라내고 새로운 끈을 이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저자의 글에서 마주할 수 있기에 충분히 아파하고 난 뒤, 더 좋은 인연과 존중 받아 마땅한 자신의 진짜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네가 힘들 게 뭐가 있어.”와 같은 말로
상대의 마음에 폭력을 행사하지 말기를. 
모든 사람은 타인이 절대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사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항상 모든 관계에서 나 자신을 생각하기보단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또 그 사람에게 비춰지고 보여질 나의 모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괜찮은 것도 괜찮다고, 괜찮지 않은 것도 괜찮다며 항상 긍정적이고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기위해 쓸데없이 나의 마음을 소모하는 일이 많았다. 어린시절엔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런 일들을 친구들에겐 거리낌없이 말하고 터놓을 수 있었는데 이젠 친구들에게마저도 나의 진짜 고민과 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져 그저 혼자 감당할 수 밖에 없어 더 큰 상처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이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마저 많지 않기에 그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책을 읽는내내 예전에 연애를 하고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며 힘들고 날 지치게 했던 수많은 관계들에 대한 기억들이 떠오르며 왜 그땐 조금은 이기적이더라도 나 자신을 더 챙기고 돌보지 않았는지, 그랬더라면 아마 지금과는 또다른 내가 되어 있진 않았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곤 했다. 비록 나는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뒤늦은 후회를 할지라도 아마 지금 열렬히 사랑하고 또 이별하며 힘들어하고 있을 청춘들과 자존감이 점점 떨어지고 괜찮지 않은 하루하루를 괜찮다며 애써 넘기다 문득 그 슬픔이 감당할 수 없이 크게 몰려와 힘겨운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의 글은 스스로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고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생해야 만날 수 있고 이해해야만 이어나갈 수 있는,
나만 노력하고 있는 관계 속의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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