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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과 서쪽으로
베릴 마크햄 지음, 한유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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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비행기를 타면 가지 못할 곳은 없다. 비행기의 발명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갈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프리카는 지금도 우리에겐 머나먼 곳으로, 또 광활한 대자연을 품은 낯선 곳으로 느껴지곤 한다. 아직 문명의 때가 덜탄 순수한 땅이라는 이미지라고나 할까. 내가 살아있는 동안 아프리카를 가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아프리카라는 나라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치며 온 몸의 근육이 꿈틀대는 역동적인 나라일 것이고, 수많은 동물들이 살아 숨쉬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나라다. 그렇기에 그런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짜 삶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상상하다보면 과연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가져보게 된다.
잠들지 않은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정적을 뚫고 우리 귓가까지 들려온다. 우리의 머리나 가슴에는, 어쩌면 혈관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불러내는 아프리카의 목소리다. 시간을 벗어났지만 지금 여기 있는 기억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구덩이 반대편까지 걸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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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베릴 마크햄은 대서양을 서쪽으로 단독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다. 1936년에 이 기록을 세웠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대부분의 비행사는 남성인 실정인데 아마 그 시절엔 더 높은 벽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삶이 그 시절 다른 여성들의 삶처럼 수동적이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녀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4살때 아버지와 함께 케냐로 이주하며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아프리카에 살며 그녀가 겪은 수많은 경험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고 한편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특히 원주민들과 나선 사냥 이야기는 과연 실제 경험인지 의심스러울정도로 위험천만하다. 멧돼지를 잡기 위한 사냥에서 사자를 만나게 되고 사자의 공격에 대응하는 원주민들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여성인 그녀가 그들의 사냥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녀가 그 상황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수많은 난관 역시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게 열일곱살이 되던해에 가뭄으로 아버지의 은조로 농장이 문을 닫게 되며 그녀는 페루로 떠나는 아버지와 헤어져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그녀가 직접 받은 말 페가수스에 실은 안장 두개가 짐의 전부였고 그렇게 떠난 몰로에서 농장에서 익힌 조련사의 자질을 충분히 살려 여성 최초로 경주마 조련사 자격증을 취득해 대회에서 우승하며 승승장구 하게 되지만 그녀는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후 아프리카의 유일한 여성 비행사가 되어 우편물과 승객을 수송하고 코끼리떼를 수색하기도 하며 비행사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새롭고 진취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이기에 아마 최초,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망설임없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대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모험가와 같은 그녀의 삶의 기록이 어쩌면 한편의 영화나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재밌기에 76년이라는 시간동안 잊혀지지 않고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새롭고 더 나은 게 없을까. 삶은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침체된다. 이런 삶조차도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변화를 절대로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고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은 하나도 좋지 않다. 지레 후회해봤자 좋을 것이 없다. 모든 내일은 모든 어제와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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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이 너무나 스펙터클하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그녀의 글로인해 더욱 깊이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그녀가 묘사하는 아프리카의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고 그녀가 아프리카에 가진 애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아프리카라는 낯선 나라에 대한 환상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비행사가 되어 대서양을 횡단하며 비행기에서 느낀 고독과 두려움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느낌을 읽다보면 안일하고 정체된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지금 많은 것을 가지고 또 누리고 있는 우리지만 훨씬 더 열악하고 힘든 여건에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 나간 그녀의 대담함에 경외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작가들의 칭송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그녀의 글솜씨에 그녀가 살면서 남긴 책이 이책 단 한권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우리도 살면서 인생의 큰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고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지나온 과거에 연연하며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또 새로운 것을 시작할 용기를 갖는 것도 힘들기만 하다. 하지만 그녀는 구름속에 가려진 미래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현재에서 당당히 그 구름속으로 걸어들어가면 그 구름은 걷히기 마련이라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녀 역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로부터, 원주민으로부터, 동물들로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간 것이다. 수많은 경험과 순간순간들이 더해지며 그녀는 자신만의 행성인 비행기와 만나게 되었고 그로인해 여성 최초의 대서양 횡단이라는 기록 역시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녀처럼 큰 업적을 이루거나 모험을 하진 못할지라도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라면 그녀 못지 않은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하늘이 나를 제 영역으로 데려간다. 밤이 나를 온전히 감싼다. 대지와의 접촉은 모두 차단된다. 내가 움직이는 나만의 작은 세계에서, 별들과 한 공간에서 숨을 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