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숨 쉴 틈 - 인생의 길을 잃은 여자, 인생의 끝에 선 노인을 만나다
박소연(하늘샘) 지음, 양수리 할아버지 그림 / 베프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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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고 나서는 하루하루가 버티는, 견뎌내는 삶이었다. 누구도 엄마의 삶이 이렇다고 얘기해 주지 않았기에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된 엄마로서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하루의 시간을 나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온전히 쏟아 붓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잠든 밤 혼자 숨죽여 울기도 하고 가끔은 남편에게 하소연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지금은 아이들이 크고 나의 시간을 확보하게 되고 일도 하며 어느정도 나의 인생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아무리 숨 쉴 틈을 찾으려해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수많은 엄마들이,여자들이 있을 것이다. 



나만 이런 것일까? 언제부터 잘못된 것일까? 다른 엄마들에겐 쉬운 일이 내게만 어려워 보인다.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난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갑자기 사는 게 무서워졌다. 

 

 

 

대부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거나 겪었던 이야기를 듣는다면 공감과 함께 위로가 되곤 한다. 누군가의 배우자로, 아이들의 엄마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 저자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처음부터 폭풍공감하며 나와 너무나도 같은 상황에 울컥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힘들기만 한 상황에서 한사람의 인생이 사라져 버린 듯한 허무함과 비참함을 느끼며 도와달라 외치는 저자에게 양수리 할아버지의 글과 그림은 큰 힘이 된다. 엄마, 아내인 나도 분명 가족의 일원이고 한사람의 몫을 하고 있음에도 아이들이 남긴 반찬에 밥을 비벼 한끼를 떼우고 내 몸과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채 돈에 쫓기고 어느새 변해버린 외모를 보며 스스로에게 미안해지는, 주위만 신경쓰고 챙기느라 바빴던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다시 찾기 위해 마주하는 많은 물음과 고민들이 나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에겐 일상이고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기에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꼭 나의 이야기 같아 더욱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무덤덤한 것 같으면서 툭툭 던져진 양수리 할아버지의 삶의 경험과 지혜가 담긴 이야기는 저자의 힘든 상황에 한줄기 빛처럼 그녀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며 쉬어갈 수 있는 틈을 준다. 서로 다른 인생의 지점에 서 있는 두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읽는 것 만으로도 나역시 함께 공감하고 진심어린 위로를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로서, 여자로서의 지금 내 삶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지나야 할 시기 중 유독 힘들 때가 있더라. 
그런데 꼭 지나보면 별거 아니기도 해. 
그때 너희들은 성장하거든. 
힘들 때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네가 가진 큰 복이다. 


 

힘든 상황이 오면 스스로를 자책할 수 밖에 없다. 매번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의 삶을 뒤로한채 살아가고 있음에도 누군가와 고통을 나누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보단 그저 참아내고 오롯이 혼자 감당하며 자신을 더욱 힘들게 만들곤 하는 것이 엄마이자 여자이다. 스스로가 보내는 위험 신호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모르는척 넘기다보면 어느샌가 그 한계점에 다다라 끝없이 추락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만 잘 이겨내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살아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절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할 것이 아니라 끝없이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되돌아 보고 챙길 수 있는 틈을 가지라 이야기한다. 양수리 할아버지의 짧고 간결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과 구구절절 내 얘기인것만 같은 저자의 솔직하고 투명한 글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서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살다보니 보통의 존재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절실히 느끼지만요. 그래도 순리대로 살아보렵니다. 전 엄마니까요. 돌아갈 수 없으니 서둘러 떠나겠습니다. 내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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