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심리학 - 우리는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가
스티븐 파인먼 지음, 이재경 옮김, 신동근 추천 / 반니 / 201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아마 사직서를 상사의 면전에 던지고 비리를 폭로하며 복수하는 통쾌한 상상을 할때가 있을 것이다. 나역시 이상한 상사들을 많이 만났었고 매번 분노하고 ‘내가 회사 그만둘때 두고보자’라며  울분을 삭히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복수를 하며 그만둔 적은 없다. 그 순간이 지나면 그냥 흐지부지 잊혀지기도 하고 저 불쌍한 인생 내가 한번 구제해 준다며 넓은 아량을 베풀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힘든 순간에 상상하는 복수는 달콤하기만 하다. 


하지만 복수를 정당화하기도, 무조건 나쁘다고하기도 힘들다. 복수는 인간의 본능과도 같기에 종교,정치,문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역에서 복수의 사례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복수는 항상 매력적이고 사람들을 흥분하게 한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복수가 주된 소재로 쓰이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대리만족으로라도 악당이, 누군가에게 잘못을 한 사람이 똑같이 앙갚음을 당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 걸까?



복수는 인간의 끈질기고 강력한 욕구다. 우리의 생물사회적 기질에 붙박이로 섞여서 전수되고, 슬픔, 비탄, 굴욕감, 분노 같은 격한 감정으로 촉발되는 원초적 본능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조직 행동 분야에서 탁월한 명성을 쌓아왔으며 노동과 사회정의에 관한 책과 논문을 꾸준히 써왔다. 그렇기에 사회 여러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복수의 문화사에 대해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오래된 복수의 사례들과 소설과 같은 문학에서의 복수, 그리고 가장 최근의 정치적 사례까지 복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접하는 놀라운 실제 복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설보다 더 소설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소심한 복수에서부터 한사람의 생명, 한 나라의 존폐 여부를 결정짓는 것까지 우리 삶과 인간의 역사에서 복수가 이렇게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우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죄 지은 이를 용서하라고 이야기하는 종교에서도 복수를 정당화하기도 하고, 전쟁으로 인해 끝없이 이어지는 보복행위로인해 피해를 입는 많은 사람들과 특히 대부분의 타깃이 여성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 아팠다. 일본의 난징학살이나 혼전 성교나 중매결혼 거부 등으로 본인과 가족에게 수치를 준 딸을 축출이나 죽음만이 치욕을 만회하는, 죄를 씻는 방법으로 여기며 자행되는 명예살인은 과연 복수라는 감정으로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복수를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는다. 복수는 개인의 안녕,영토,긍지,명예,자존감,신분,역할을 위협하는 것들을 억제하고 앙갚음은 부당 행위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복수는 이지러진 평형과 서열을 재설정한다. 복수는 개인 간 암투, 집단의 내분, 노사 분쟁, 내전과 국제전에 존재하는 암묵적 관습법이며 자아와 공동체의 궁극적 자기 진술이다. 타인의 침범을 막는 방어 수단이자 경고 조치로 날것 그대로의 정의라는 것이다. 게다가 아주 악의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직장 내 작은 복수들은 약간의 사기 진작, 피할 수 없는 울분과 불의에 대한 해독과 같은 상당한 효과를 낸다고도 한다. 또한 정치에서도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흠집내는 네거티브 전략이 항상 대중들에게 먹혀든 사례가 많기에 수많은 정치인들이 누군가 자신을 비난하면 똑같이 상대방을 비난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복수는 인간의 끈질기고 강력한 욕구인 것이다. 



고통을 고통으로 되갚고 싶은 격렬한 욕망이 끓어오른다. 응징 욕구는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고, 도덕과 이성이 만든 제약들을 우회하는 길을 끝없이 찾는다. 

 

 

 
하지만 가족중에 누군가가 살해당했다고해서 살인범을 복수의 일환으로 똑같이 살해한다면 그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 그렇게 한다고해서 죽은 나의 가족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해서 살인범을 편안히 살도록 내버려두기엔 그 고통이 너무 크다. 옛날엔 직접 복수를 했지만 지금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대신 합법적으로 복수를 해주고 있기에 그것도 분명 살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이 살인범의 감옥살이와 벌금만으로 해소될리는 없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범죄의 피해자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자가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에서는 나의 뺨을 때린 사람에게 나머지 한쪽 뺨을 내밀고 용서하라고 얘기하지만 어찌 용서가 그리 쉽게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쉽게 용서할 수 있는것이 사람이라면 그 모든 갈등은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복수는 분명 매력적이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복수라는 감정에 단편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이 책은 인간의 강력한 복수심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복수의 또다른 면을 생각해보게 해주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회사에서의 날 괴롭히는 상사에게 침 뱉은 커피를 권하고 날 힘들게 하는 배우자가 잠들었을때 몰래 침대에서 발로 차 떨어뜨리는 소심한 복수를 하고도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착한(?) 우리에게 복수는 원초적 본능이라고, 그러니 괴로워 말라는 작은 위로를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복수라는 램프의 요정이 일단 세상에 나오면 그 괴물을 다시 호리병 속에 넣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중세에 전쟁과 단죄의 이름으로 벌어졌던 살육과 복수를 두렵고 역겹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분쟁은 그보다 덜할까? 오히려 비참함의 규모가 몰라보게 커졌다. 보복 공격은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초토화한다. 인류 앞의 중대한 도전은 지금도 여전히 같다. 그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 다리를 놓고, 우리를 하나로 묶을 측은지심을 살릴 더 좋은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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