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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ㅣ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스포츠를 보면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는 것을 느낀다. 얼마전 개최되었던 평창 올림픽과 더불어 많은 경기들을 보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단편적인 선수들의 짧은 경기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을 수 있고 승리한다면 더 큰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그 과정에 어린 피땀과 노력의 스토리까지 더해진다면 스포츠를 더이상 단순한 운동으로 생각할 순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보고 즐기는 즐거움일지라도 누군가에겐 그것이 생명과도 같은 절박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포츠가 언제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지만은 않다. 스포츠정신에 위배되는 공정하지 못하고 위선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모습 역시 자주 접할 수 있다.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만들어내는 사람의 추악한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것도 스포츠다. 그렇기에 어찌보면 짧게 압축된 우리의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생의 굴곡처럼 하나의 스포츠 종목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담긴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스포츠가 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당신의 전부다.
저자는 ‘오베라는 남자’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감동소설의 대가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이미 ‘오베라는 남자’를 뛰어넘어 이시대의 디킨스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전 작품들이 가지는 웃음과 감동과는 또다른 깊이 있는 무언가를 안겨주는 이번 소설은 베어타운이라는 한 마을에서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도시는 하키의 도시다. 쇠락해 가는 마을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이제 하키밖에 없다. 청소년 하키팀이 우승하게 되면 다시 마을이 부흥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하키란 스포츠를 넘어선 하나의 종교처럼 여겨진다. 그 팀의 중심엔 에이스인 케빈이 있고 나머지 선수들은 케빈을 주장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도 그럴것이 케빈은 실력뿐만 아니라 베어타운에서 가장 유지인 부모를 두고 있기에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베어타운 하키팀의 중심이다. 베어타운 하키팀은 후원자들의 후원이 없이는 팀을 이어나갈 수 없기에 단장인 페테르도, 코치인 다비드도 그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의 스포츠 경기임에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혀 있기에 단순히 우승 타이틀을 쥐기 위한 팀의 노력과는 별개로 각자의 이익과 마을의 미래를 위해 베어타운의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모든 희망을 건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승리한후 케빈의 집에서 이뤄진 하키팀원들의 축하파티에서 케빈은 단장 페테르의 딸인 마야를 성폭행하게 되고 그 장면을 빠른 스케이트 실력으로 코치의 눈에 띄어 극적으로 준결승전에 선발된 아맛이 목격하게 된다. 그로인해 마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되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결승전을 치르러 하키팀이 떠나려는 그 시점에 케빈은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하키팀의 결승전에 모든것을 걸었던 베어타운 주민들은 과연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도시와 인간, 양쪽 모두에게 적용되는 가장 단순한 진리가 있다면 모두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이야기하는 대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키에 모든 것을 건 베어타운 사람들에겐 우승말고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기에, 한 아이의 인생이나 미래를 생각해 줄 여유는 없다. 모든것이 하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마을에서 하키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가차없이 쳐내고 짓밟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어른들의 모습에서 아이들 역시 단지 목표물만을 바라보고 절대 옆을 보지 않으며 끊임없이 뛰는 한마리 경주마처럼 변해간다. 가슴에 품은 자신들의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한 그들의 고군분투는 단지 작은 마을 베어타운만의 모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똘똘 뭉치는 이기적인 집단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기에 가상의 공간인 베어타운이 실제로는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것이란 착각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정의를 잊지 않고 모두가 대의라고 생각하는 일에 용감하게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고 그로인해 진실은 감춰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압축시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잘못을 빌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하지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깊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각자의 캐릭터들이 가지는 사연과 스토리가 전체적인 이야기와 함께 어우러져 큰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자식을 잃은 상처를 가진 부모와 난민으로 홀로 이이를 키우는 싱글맘, 한때 촉망받던 하키 선수에서 백수가 된 퇴물, 노력만큼 이뤄낼 수 없는 실력을 가진 선수, 그리고 정의와 개인의 이익 사이에서 고뇌하는 어린 소년과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는 수많은 아이들까지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생각과 행동들이 작은 마을 안에서 하키라는 스포츠를 중심으로 펼쳐지며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의 이마에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이 저자의 전작을 읽었고 또 그로인해 비슷한 감성을 느끼고자 하는 이들에게 너무 어둡고 진지하게 다가와 선뜻 책을 넘기기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 속엔 그보다 더욱 큰 감동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희망과 용기에 대한 저자만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더 속도가 붙고 멈출 수 없는 매력을 느낄 수 있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뿐이지.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