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왕도로 가는 길>은 실용적 차원에서 보면 메남 강 하구와 크메르 왕국의 수도 앙코르와트를 잇는 "왕성으로 가는 길"  — 밀림으로 뒤덮인 길 —에서두 주인공 클로드와 페르캉이 전개하는 모험을 그린 소설이다. 하지만 이것은 피상적인 책의 얼개에 불과하고 소설이 전하는 심층적 메시지는 인간이 진정으로 가야 할 정신적인 구도(求道)의 길로서 '왕도'이다.

작품은 정교한 소설시학을 통해 작품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완벽하게 코드화해놓고 있다. 

소설에서 밀림 속에 사는 원주민들은 불교도들이고 특별한 성적 신비주의를 신봉하는 모이족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불교와 신비주의적 에로티시즘이 결합된 탄트라 불교를 믿는 종족인 것이다. 늙은 주인공 페르캉은 이들을 정복하여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지만, 그들의 신앙에 이미 입문해 있다. 그러니까 그는 탄트라 불교에 입문한 모험가인 것이다. 따라서 젊은 주인공 이 페르캉을 따라 입문하는 정신적 세계는 바로 탄트라 불교이다. 소설에서 심도 있게 다루에지는 "인간 조건"은 시간 속에 죽음을 향해 가야 하는 불교적 운명인 생로병사이다.  페르캉이 마지막에 죽어가면서 "저 가없는 창공의 눈부신 빛"과  하나되면서 우주적 의식으로 회귀하는 장면은 불교적 공의 의식이다. 

이러한 입문의 과정이 직접적인 언어를 배제하고 독특한 소설시학, 곧 상징시학을 통해 완벽하게 코드화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프랑스어 소설 제목 "La Voie royale"은  '왕도'라는 의미도 있다.  한국어 번역이 "왕도로 가는 길"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작품의 심층적 의미작용을 꿰뚫지 못한 데서 비롯된 번역이다. '왕도'로 번역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실용적 차원에서 "왕성으로 가는 길"과 인간이 가야 할 불교적인 정신적 왕도를 둘 다 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말로는 동양의 대표적 종교인 불교를 탐구하고 있지만 이 종교와 탄트라 에로티시즘을 결합함으로써 독특한 울림을 생산해내고 있다.

번역본에는 작품의 심층적 의미에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오역이 상당히 많다. 이 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이 작품만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저서 김웅권 저, <말로와 소설의 상징시학 — <왕도> 새로 읽기 —>, 동문선, 2004를 읽어보길 바란다. 책이 좀 어렵지만 앞 부분은 건너 뛰고 제2장부터 읽으면 좀 낫다. 이 연구서의 내용은 프랑스에서 프랑스국립 과학연구센터가 지원하여 출간된 <말로 사전>에 <왕도로 가는 길>에 대한 해제로 실릴 만큼 국제적 권위가 인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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