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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6년 12월
평점 :
채사장님에게 보내는 팬레터
나라는 의식이 닫혀있는 완결된 세계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욕조 안에서 충분히 바다를 경험하는 꼬맹이처럼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안전한 울타리이자 안식처, 유일하게 자유로운 공간이었고 최고의 대화 상대였어요. 살면서 낯섦에 마주할 때 마다 조금씩 나의 세계는 넓어져 갔습니다.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경험은 산다는 일에 조금씩 자신감을 심어주었고요. 즐겁고 안온한 자폐의 나날들이라 할까요.
그러다가 자꾸 나를 두드리는 목소리를 만나게 되었어요.
봐봐요, 이거 흥미롭지 않아요?
이런 생각 어때요?
이걸 이런식으로 본 적 있어요?
진짜, 완전 대단한 거 알려줄게요.
..한 번 들어봐봐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이전까지의 세계는 내 시야 안에 들어온 만큼, 내가 용기낼 수 있는 만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그 모습을 드러내었어요. 그런데 나에게 말 걸어오는 목소리는 너무나 거대하고 통합적인 세계가 있다고, 눈을 뜨고 보라고 자꾸 나를 깨우네요. 어서 삶을 여행하라고, 이 놀랍고 신비한 것들을 보라고,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있게 길을 나서라고 손을 잡아주네요. 놀랍고 기뻤어요. 달빛에 의지에 밤길을 걷다가 등불 가진 이가 동행하자고 청해주는 느낌. 불을 나누어 주는 느낌. 당신은 당신의 목소리가 어떤 식으로 타인에게 가 닿는지 상상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질문과 탐구를 드러내어 기꺼이 보여주는 그 용기에 감탄해요.
인기작가라는 권위로 독자를 짓누르지 않고, 애매모호한 은유와 상징의 커튼 뒤에 숨는 대신 온 몸으로 당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고마워요. 당신의 목소리가 나에게 와 닿았던 건 발신자를 숨기지 않는 사람 대 사람의 소통이었기 때문이예요. 당신의 목소리와 문장들에 드리워진 삶의 고통과 기쁨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통해 일상 너머를 여행하는 여행자로서의 여정을 시작했고, 살면서 마주하는 이들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려고 해요. 우리는 과연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혹시 그렇게 된다면 꼭 소식 나눌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 여정 사이에 잠시 동행하고 차 한잔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독자의 질문에 제대로 눈을 마주치고 미처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그 너머를 읽어내는 당신을 아낍니다.
꿈 속에서 몹시도 마음을 쓰다 깨어나 마음이 먹먹한 채로 한참을 마음을 다스리는 당신을 아낍니다.
작가는 자신의 슬픔을 팔아 먹고 산다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당신을 아낍니다.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 앉아 일에 몰두하고 있을, 그 치열한 등을 아끼고 아낍니다.
조용히 발신하는 신호가 끊기지 않길. 어떤 형태로든 당신의 신호에 응답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