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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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만든 안드레 애치먼의 회고록과도 같은 <하버드 스퀘어>. 하버드 대학원생과 택시운전사 둘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 아들과 캠퍼스를 투어하던 주인공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하버드 재학 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를 함께 했던 택시운전사 칼라지도 떠올린다. 이집트 출신인 ''와 튀니지 출신의 베르베르인인 '칼라지'는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진다. 서로를 이해하며 주인공에게 칼라지는 의지할 데 없는 곳에서 유일한 친구가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하버드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가며 또한 칼리지와 자신이 다르다는 걸 느끼며 점차 칼라지와 멀어진다. 앨리슨의 아빠와 저녁을 먹을 때, 종합시험을 통과한 후 강사로 일할 때 등에서 칼라지를 모른척하고, 칼라지에게 필요한 도움을 외면한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수치심은 비유이고 단어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혼이라는 커다란 환전소에서, 수치심은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에 가까이 가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또 하나의 결핍된 단어일 뿐이었다."

 

 

''에게 칼라지와 함께한 시간, 칼라지에 대한 기억은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이방인으로서 낯설고 힘들며 외로운 삶에서 친구가 되어 준 칼라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한 마음이 가져다주는 수치심은 칼라지와 함께한 기억을 묻어두도록 만든다. 세월이 흘러 아들과 다시 찾은 하버드에서 ''는 칼리지에 대한 그리움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수치심에 묻어두었던 기억과 그 때의 나를 마주하며 고통스럽기도 하고, 애증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과 비슷한 것 같아 연민과 사랑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에 머물러있어 증오를 느끼는 대상이었던 칼라지. 오랜만에 찾은 하버드 광장에서 과거 시절을 마주한 ''는 이런 칼라지를 떠올리며 어떤 생각을 할까. 칼라지와의 관계가 후회되고, 부끄럽지만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같이 보낸 칼라지와 제대로 된 작별인사 없이 헤어진 것에 더욱 아쉬움과 그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누구나 느낄 법한 마음이다. 과거의 어느 시절이 그립고, 아쉽고, 후회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혹은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선택은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특히나 두려움과 불안, 혐오, 우정, 사랑, 연민 등의 모든 감정이 소용돌이 칠 젊은 나이 때라면 더더욱. ''가 칼라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처럼 마음에 남아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계속 머물러 있지는 않는, 그리워하며 문득 꺼내보고 싶은 그런 마음을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이런 마음을 만들고, 느끼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름다웠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후회하며, 부끄러워하며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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