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번째 밤 :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도미노 총서 2
윤원화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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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 지혜 이외에 삶에서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 이들의 감각적 느림을 말이다.

 

그리하여 비포가 현재에 충실하면서 예기치 않은 시간의 노선이 싹틀 수 있는 불확정성의 씨앗을 뿌리자고 독려할 때, 젊음과 미래주의는 나란히 빛을 잃고 강물에 버려진다.

 

선배 작가들이 관심 있게 본 후배 작가들을 선정하고 직접 말을 붙이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전시에서, 젊은 미술가들은 일종의 카나리아처럼 배치된다.

 

17~18 이들은 미래가 소진된 시대의 낙인이 찍힌 자로서 사회적 모순에 휘말리고 미술 제도와 충돌한 개인적 경험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가시화한다. 전시작들은 대개 사적 개인으로서 경험하는 일상의 층위와 그보다 넓게 조감되는 현실의 층위, 그리고 미술가로서의 활동을 규정하는 미술 제도의 층위가 유의미하게 결합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상황을 조금은 자조적으로 고백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백색 전시 공간의 서늘한 조명 아래서 사회 비판 또는 제도 비판이라는 미술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는 어엿한 미술의 일원으로 회수된다.

 

19 제도화된 미술에 대항하기 위해 현대 민속 문화를 그 대척점으로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기성세대의 미술이 추구했던 미학적 이상과 동시대 젊은 미술가들이 대면하는 헐벗은 현실을 대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무엇으로든 빈 공간을 메우고 고요한 시간을 가리면서 어떤 구멍과 대면하지 않으려는 불안의 심리이고, 그런 불안에 의해 빠글빠글하게 가득 채워진 세계에서도 기어코 재발견되고야 마는 구멍의 존재.




어떤 것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어떤 것은 변할지도 모르지만, 그날 밤의 캄캄한 겨울 산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시간은 작가와 친구들이 만들어낸 공통의 작은 결과물로서, 제각기 알 수 없는 시간을 마주하게 될 서로에게 일종의 선물처럼 건네진다. 전시장에서 영상을 보는 관객은 관객을 통해 대표되는 미술 제도나 기성 사회를 향해 발화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영상의 후반부는 이들이 우리를 위해 그 산에 올랐던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런 작업들은 총체적인 시간의 흐름을 전제하고 이를 견인하는 세대의 수레바퀴를 그려 넣으려는 전시 기획과 약간 어긋나게 움직이면서 에워싼 시간을 주의 깊게 탐사하고 그 속에서 다른 시간의 실마리를 찾으려 시도한다. 확실히 미래주의적 태도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어딘가 먼 곳으로부터 신비로운 이방인처럼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 벽력 같은 구원을 내려주기를 바란다면, 그런 것은 없다. … 지금 우리의 세계로부터 솟아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 전시를 조직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제도 내에서 순환되고 그럼으로써 제도를 부양하게 될 신선한 미술가를 확보하는 것이다. … 전시는 스스로 미술의 밝은 미래를 보여준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을 떠받칠 젊은 미술가들을 수급하지 못해 조바심 내는 미술이란 대체 무엇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미술가들이 수행적으로 발견해나가는 미술은 또 무엇인가? 여기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미술, 두 개의 시간이 중첩되어 있다. 이 시간들은 때로 동일한 전시에, 심지어 동일한 작업에 중복 투영되면서도 서로 마주치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이러한 미끄러짐 또는 시간의 탈구를 전면화하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시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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