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사 - 개정판
S.P.램프레히트 지음, 김태길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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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세계에 아무런 본래적 질서도, 아무런 일관된 목적도, 아무런 도덕적 정부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선하다, 혹은 악하다, 아름답다, 혹은 추하다, 기계이다, 혹은 유기체이다 하는 따위의 술어를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의지라는 것, 그리고 인간이 여러 가지 예술에 있어서 아름다운 형상들을 창조함으로써 세상의 싱거움과 혼란으로부터 피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쇼펜하우어와 같은 생각을 가졌었다. 그는 의지를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는 디오니소스적 요소라고 불렀고, 형상에 대한 관조를 아폴론적 요소라고 불렀다. 그러나 인간이 의지의 여러 충동으로부터 피해야만 된다고 하는 쇼펜하우어의 신념에 대해서는 옳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살려는 의지를 부정하라는 쇼펜하우어의 충고를 무시하였다. 살려는 의지로 말미암아 결국 사람들은 고통을 겪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통을 어떤 사람이 사내답게 살고 있다는 표적으로서 환영하였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을 내다보고는 그만 약해진다는 것과 모든 훌륭한 업적은 격렬한 고통을 겪어야만 얻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적 환경에서 여러 도덕적 교훈을 받아들인다는 것, 그리고 만일 사회의 따분한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어떤 강한 의지가 그 자신의 도덕적 자율성의 지휘를 받아 관습의 타성을 물리칠 때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엇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죄의식으로 말미암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과거의 여러 가지 흠을 들추어내어 자기 자신을 괴롭힐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훌륭하고 뛰어난 행동을 하도록 권하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잘 순종하며 의무를 지키며 온건하며 신중하며 이기적이 아닌 행동을 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용어법에 있어서, 악이란 사람들의 병적인 양심이 그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어떤 것이나 악이다. 니체는 사람들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느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느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느니 하는 따위의 격언을 따르는 것을 비난하였다. 사람들이 온유와 마음의 가난과 투쟁에 대한 공포를 찬양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약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악한 일들이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이다. 그들이 이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에게 힘을 가지고 행동하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뛰어난 사람은 약자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을 돌아보는 처지를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뛰어난 사람은 악한 것은 무엇이든 이를 피할 것이다. 그는 게으름, 자기 만족, 관능적 쾌락의 유혹,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상업성의 이득, 명성을 얻기 위한 값싼 과시, 그리고 온갖 핑계를 피할 것이다. 그는 기운을 내어 여러 가지 위험에 부딪칠 것이다. 또한 대담하게 살아갈 것이며, 언제나 먼저 득실을 계산하기 위해서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선량과 사악 사이의 구별은 약자가 생각해 낸 거짓된 구별이다. 그것은 그들의 형편없는 연약함을 혹은 변명하고 혹은 보호하기 위해서 생각해낸 것이다.

체념하기 위해서 체념하는 것보다 더 도덕적으로 추악한 일은 없다. 보통 실천되고 있는 금욕주의는 어리석고 졸렬하다. 과연 엄격한 자기 훈련은 위대한 일의 필수 조건이 될 수 있고, 금욕적 수행은 예술가나 철학자로 하여금 그가 추구하는 높은 처지에 올라갈 수 있게끔 하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 좀더 좋은 것을 위해서 무엇을 단념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체념을 추구하는 까닭에 무엇을 단념한다는 것은 당치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어떤 그의 강경한 경구들에서 니체는 남녀의 순결을 비난하고 있다. 그가 순결을 비난한 것은 탕아를 찬미해서가 아니라, 욕망이 없는 사람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강렬한 욕망은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하는 보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하나의 없어서는 안 될 필요 조건이다. 성문제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보다 훌륭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저 체념을 일삼기 위해서 절제하는 것은 옹졸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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