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예술이론
제이 에멀링 지음, 김희영 옮김 / 미진사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프로이트)


거의 모든 곳에서 현저한 실수들, 교란시키는 반복들, 명백한 모순들, 소통을 전혀 의도하지 않는 사물들의 기호들을 찾아볼
수 있다. … 왜곡은 “외양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비틀어 변형시키는 것”, “다른 장소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이트의 저술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무의식에 접근하여 이를 해석하는 체계적 방식을 전개시킨 것이다. 위에 인용된 글에서 프로이트는 의식적 삶, 자아의 행적 life history을 “억제되고 포기된 내용abnegated material”으로 어지럽혀진 텍스트, 즉 다른
근원의 흔적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유대인 랍비가 성경에 내포된 의미를 전달하는 관례에 영향을 받은) 문헌해석의 행동과 함께 심리적 과정의 행동들을 분명하게 생략한다.

(니체)
     
“이러한 문화의 비극적 인간은” 새로운 예술, 형이상학적 안락을 주는 예술을 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헬렌을 염원하듯이 비극을 염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존재의 현실을 대하는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꿈의 현실을 대한다. 그는 치밀하고 의지에 찬 관찰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러한 형상들에 의거하여 삶을 해석할 수 있고, 이러한 과정들을 반성함으로써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훈육하기 때문이다.
     
(바디우)
     
그의 주된 관심은 사건의 이론화이다. 여기서 사건은 담론의 변화, 새로운 욕망에 대한 관계, 매우 새로운 윤리 혹은 “존재방식”을 생성하는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 있어서의 단절을 의미한다. 바디우의 철학은 이러한 예측불가의 사건들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며, 이 사건들은 그가 일반적 절차들이라고 칭한 과학, 정치, 사랑, 예술이라는 4개의 유형에 의해 생성된다.
     
예술은 하나의 진리-사건, 즉 다수의 존재, 자기 정체성의 근거들을 재구성하게 되는 불확정적인 “어떤 사람”을 만들어내는 현상황 안에 내재된 단절을 생성할 수 있는 하나의 절차다.
     
바디우는 ... 예술의 보편성을 역설하면서 예술이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 있는 진리를 비인격적으로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리는 세계화의 강요된 보편성에 맞서는 새로운 보편성을 위한 유일한 철학적 이름이다. ... 예술의 새로운 보편성이란 감각 그 자체에서 이념이 우연히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창조다.
     
예술작품은 관람자를 방해하여 욕망과의 새로운 관계를 유도할 수 있는 단수성이다. 이러한 명제를 가지고 바디우는 예술, 정치, 사랑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다. 
     
명백한 것은 진리의 근원이 사건의 질서라는 것이다.


(벤야민)


벤야민은 모호함, 의미의 복수성, 분절적인 재현에 주목하여, 알레고리가 현대 예술작품들과 17세기 독일 바로크 애도극간의 유사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폐허 안에 놓여있는, 매우 중요한 파편이자 잔재는 사실상 바로크 창작에 있어 가장 훌륭한 자료다. 왜냐하면 바로크 문학에서는 목표에 대한 엄밀한 생각 없이 기적을 끊임없이 기대하면서, 파편들을 부단히 쌓아올리는 것이 일반적으로 실행되기 때문이다.

"매우 중요한 파편"이라는 이 개념은 현대예술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벤야민은 알레고리 이론을 논의하면서, 전례를 맥락에서 분리시키는 인용이라는 이전의 전통을 다루는 가장 현대적인 예술적 수단의 하나가 사실상 독일 바로크극과 함께 생긴 제스처라고 설명한다.


현대성의 문화적, 심리적 기원을 탐구하려는 초현실주의자들과 벤야민의 욕망은 분명히 유사하다. 그들이 관심을 공유하는 것들은 경계적인 심리상태 (자생적 무아지경과 감각의 착란), 정치, 일상생활의 순간적 경험, 환상, 억압, 유행이 지난 상품 등이다. 이러한 공동의 관심사들로 인해 벤야민은 자신의 탐구와 초현실주의자들의 탐구가 동일선상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탐구의 입장은 현재에 잠재하는 과거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현실화하고자 한다. 벤야민은 초현실주의에 대한 에세이에서 이러한 잠재적 가능성을 포착하는 것을 "세속적 계몽"이라 칭했다. 세속적 계몽은 현대성의 황폐해진 경험들을 하나의 혁명적 희망으로 변형시킨다. 근본적이고 제한적인 기억의 개념을 전제로 하여 사물들의 물질성 (19세기 자본주의의 퇴적물)과 구원 (벤야민에게는 메시아적인 개입이면서 브르통과 동료들에게는 "초현실성"의 도래)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바타이유)
     
헤겔에게 사유는 물질성이지만, 바타이유는 사유를 넘어서는 토대유물론-물질, 단순한 사물, 더러움, 배설물적 요소들-에 있다고 주장한다.
     
바타이유의 주장에 의하면 토대유물론의 주된 요소는 비정형이며, 이는 위반의 가능성, 즉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지양하거나, 틀을 부여할 수 없는 “저주의 몫”이 지속적으로 존재함을 보여준다. ... 이것은 도덕적, 정치적 규범들의 위반, 즉 인간의 가치와 이것을 위한 제도가 만들어 놓은 경계의 위반을 암시한다.
     
     
토대유물론은 관념론뿐 아니라 우주 안에서의 형태나 구조를 주장하는 것을 배제한다. ... 예술이 삶을 모방하고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는 전제를 파기한다. 플라톤의 <공화국>에 의하면, 이 계약을 파기하면 이상적인 상태로부터 추방된다. 또한 이것은 인간의 삶의 현 상황을 가장 잘 재현한다고 여겨지는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의 전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초현실주의가 현대성 그 자체의 얼굴-프로이트와 마르크스가 근본적으로 재정의한 실존을 위한 진정한 예술-이라는 브르통의 목적론적 주장에 맞서, 바타이유는 비정형의 개념, 즉 서구의 미적 사유 안에서 예술가가 가지는 기본적 역할의 위반으로 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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