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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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신을 흔들어 놓는 작가를 만나는 일은 너무나 짜릿하고 황홀하다. 이런 강렬한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독서에 중독되고 만다. 책을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런 경험을 못했을 뿐이지, 애초에 책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독서는 내 마음이 가서 착 달라붙어 버리는 문장들을, 나를 뒤흔드는 작가를, 손에 쥐는 것만으로 충만해지는 책을 찾는 과정이지 않을까.

비비언 고닉이 나에겐 그런 작가이다. 그녀의 책이 10권이든 100권이든 내 책장에 꽂아둘 용의가 있는데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것은 이 책,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포함 3권밖에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울 따름이다.





이 책은 비비언 고닉의 자전적 에세이 성격을 띠는 책으로 그녀의 여러 글을 모아 엮은 선집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접어 놓은 페이지 귀퉁이가 쌓여 책은 본래보다 훨씬 퉁퉁해졌고 줄 친 문장들로 인해 뿌듯하게 지저분해졌다. 이제 이 책은 서점에 쌓인 똑같은 책들 중 한 권이 아니라 나에게 와서, 내 공감으로 살찐, 진정한 내 소유의 책이 되었다.

비비언 고닉의 글은 밸런스가 뛰어나다. 자신을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소개하는 작가의 글이, 무겁지 않지만 굉장히 깊고, 신랄하지만 위트 있으며, 극도로 솔직하고 대담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지만 선을 넘지 않기에 읽는 이를 지치게 하지 않는다. 게다가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잘 버무려서 재밌기까지 하다. 대단한 균형감각으로 여러 주제를 넘나들며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____문제는 우리 둘 다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데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린 영원히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고 느끼는 인간들인 것이다.

비비언 고닉은 자신의 기질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임을 간단히 인정해버린다. 내가 그녀에게 끌렸던 것은 나 또한 그녀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기질을 가졌던 나는 그게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긍정적인 태도로 살려고 노력할 순 있지만, 순간적으로 느끼는 생각은 기질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나 하고. 노력하기도 전에 튀어나오는 생각을 바꾸는 건 내 의지의 소관이 아님을. 그렇다면 부정적인 사람은 나 자신과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을까.

예민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내면이 필터가 성기지 않고 촘촘해서 그대로 통과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통과되지 못한 걸 세세히 따지고 면밀히 들여다보며 정확한 이해에 이르려 한다. 즉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더 깊은 이해에 이르고 싶다는 욕구의 발산이지 않을까.

그녀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었기에 기질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그녀 자신에 대한 것이든,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것이든, 심지어 뉴욕이라는 큰 도시의 기질까지도. 그녀 자신을 괴롭히기도 했던 날카로운 생각과 말들 덕분에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문장들이 단단한 표피를 깨고 나와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삶이 불능의 총합처럼 느껴지려 할 때면, 나는 타임스스퀘어까지 산책을 나선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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