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렘 입숨의 책 - 구병모 미니픽션
구병모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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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 폼(short-form) 콘텐츠가 대세는 대세인지, MZ 세대들의 이런 콘텐츠 소비 흐름은 비단 영상뿐만 아니라 문학으로까지 번져가는 양상이다. 최근 몇 년 간 단편소설집이 서점가에 많이 보이더니 이제는 그보다 더 분량이 적어진 채, ‘미니픽션’, ‘엽편소설’, ‘초단편’이란 타이틀을 붙이고 출간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대해 독자 각자의 호불호와 우려가 있겠지만, 나는 어쨌거나 분량을 따지기 이전에 그것 또한 문학이기에 두 손들어 환영하고 싶다. 게다가 이런 엽편소설들은 다양한 모바일 플랫폼이나 매거진 등의 기획 하에 여러 주제로 쓰이며 이후에 여러 편을 묶어 책으로 출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오히려 초단편이기에 책이란 한계에 묶이지 않고 다양한 매체에 실려 문학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짧은 이야기는 분명 더 거대한 세계의 이야기의 입구가 되거나 다른 작품의 씨앗이 되리라는 믿음도 있다. 구병모의 미니픽션집이 그런 확신을 더욱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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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구병모 작가 자신은 보통은 초단편 분량은 잘 안 쓰는데 여러 매체의 요청에 의해 썼던 몇 편의 글을 모아 책으로 내놓는 것에 대해 ’로렘 입숨‘이라는 조심스럽고 겸손한 제목을 붙였다. 로렘 입숨(Lorem Ipsum)은 인쇄와 조판 산업에서 레이아웃을 편집하는 데 쓰인 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을 때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을 말한다. 이토록 겸손한 책의 제목에 무색하게, 이 책에 실린 13가지의 이야기는 충분히 새롭고 매혹적이다. 마치 작가와 친분이 있어서, “작가님 요즘 뭐 쓰세요?”라고 물어봤을 때, 나에게만 특별히 지금 쓰는 이야기를 짧게 축약해서 얘기해 주는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구병모 작가가 수록 작품 중 <롱슬리브(2017)> 에 대한 소회에서 밝혔듯이, 초단편의 분량이라도 해서 원고를 쓰는 데에 품이 더 적게 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나 또한 초단편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걸까. 중단편의 프리뷰쯤으로, 미완성 작품이라는 편견. 미니픽션은 짧기에 의미가 있는 이야기일수도, 그 자체로 완벽하게 예쁜 소담한 야생꽃 같은 것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구병모의 <로렘 입숨의 책>은 크게 피어나지 않더라도 바라보면 기분 좋아지는 야생꽃 더미 같은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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