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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길들이기의 역사 - 인류를 사로잡은 놀라운 과일 이야기
베른트 부르너 지음, 박경리 옮김 / 브.레드(b.read) / 2022년 9월
평점 :
과일나무 재배의 역사로 보는 매혹적인 인류 문화사
#도서제공
은퇴 후 부모님은 엄마가 태어난 집 터의 오래된 고향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지으셨다. 집이 완공되고 부모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을 빙 둘러 과일나무를 심으신 일이다. 도시에 살면서 고향집을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셨는데, 세입자는 몇 십 년은 족히 된 과일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관리가 귀찮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항상 베어져 버린 나무들을 그리워했다. 고향에 다시 내려가면 과일나무부터 심겠다고 다짐을 단단히 하셨다.
그렇게 심은 키 작고 얇았던 과일 묘목들은 매년 땅의 영양분을 실컷 먹고 천천히 굵어져 갔다. 포도나무는 울타리를 꽉 잡고 올라가 무성한 가지를 뻗고 마치 자신의 숲을 이룬 듯 풍성해졌다. 가을이면 수많은 포도송이가 무겁게 달려 진한 단내를 풍겼다. 🍇🍇🍇 포도나무 옆에는 배나무, 사과나무, 개복숭아 나무가 자라고 집 뒤엔 대추나무가, 마당 한편엔 호두나무도 심으셨다. ‘풍요롭다’는 형용사는 부모님 집의 과일나무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
달콤한 과실, 향기로운 술, 아름다운 풍경, 시원한 그늘, 예술적 영감까지.
과일나무의 이점을 옛날 사람들도 몰랐을 리 없다. 선사시대라 부르는 까마득한 과거부터 인간은 과일을 먹어왔고 채집하던 인간은 재배하는 인간으로 나아간다. 이 책의 저자 베른트 브루너는 수많은 책과 방대한 자료 속에서 인간의 과일 재배의 역사를 찾아 한 권에 정리하였다. 그는 긴 시간의 축과 거대한 대륙들을 오가며 과일에 얽힌 역사, 인류 문화사, 식물학, 지리학을 함께 녹여낸 매력적인 여정을 만들어냈다.
저자가 풀어 놓는 과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또한 이 책의 매력 요소이다.
예를 들어,
¹
인류가 최초로 재배한 과일나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올리브🫒라고 한다. 사해 북쪽에서 발견된 올리브 씨와 나무의 잔재는 이곳에 의도적으로 심겼으며, 자연적으로 닿지 않았을 물을 인위적으로 공급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²
르누아르가 가장 좋아한 과일은 올리브🫒였다. 그는 매일 아침 갓 구운 식빵 위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소금을 쳐서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자신의 사유지의 올리브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정도였다고 한다.
³
야생에서 자라는 오렌지나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이 노력했지만 오렌지의 기원을 밝히지 못했다. 즉 오렌지는 '토종 농산물'이 아닌 것이다.
⁴
18세기 포츠담의 프로이센 통치자들의 궁정에서 체리🍒는 특별한 자리를 차지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육욕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체리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원에 아주 많은 체리나무를 심고 가장 오랜 기간 신선한 체리를 공급하는 것이 재배 목표였다고 한다. 미국의 제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과일 농사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는 버지니아에 있는 그의 사유지에 몇 천 그루의 과일 묘목을 심고 가꾸었으며, 과일 농사에 대한 아주 자세한 일기를 남겼다.
이 책은 시각적으로도 즐겁다. 고흐, 세잔의 명화부터 다양한 사료와 사진, 현대적인 명랑한 포스터까지 삽화가 다채롭게 실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흔히 먹는 과일의 존재가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 과일을 먹을 때 이 책을 뒤적거릴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이주할 때 자신의 검뿐 아니라
새와 네발짐승, 곤충, 채소 그리고 과수원까지 함께 지고 간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_____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