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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임이랑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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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물리적 실체를 갖추고 나를 공격해 온 건 올 초의 일이었다. 3차 백신을 접종하고 난 후 부작용의 일종인,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인한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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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끝이 간지러울 정도로 심장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더니 온몸이 순식간에 서늘해졌고 식은땀이 쏟아졌다. 과호흡과 어지러움 때문에 서 있기 힘들었다. 마치 나 혼자 사방이 막힌 투명 장막에 갇힌 듯, 사람의 말소리가 아주 작은 차이로 엇박자로 들려 인지하는데도 노력이 필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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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있으면 내가 완전히 고장 났다는 무서운 생각에 눈물이 계속 흘렀다.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었고 좋아하는 책 한 줄도 읽고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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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공황장애 증상은 일시적으로 생겼다 사라졌지만, 그 이후로
나는 내 안, 어느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불안함을 인지하며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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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함에 고통받는다는 건 외롭고 고독한 일이다.마치 투명한 칼이 목에 닿은 채 당장이라도 베어버릴 듯 나를 위협하고 있는데 타인에겐 절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불안은 작은 점 같다가, 갑자기 에어백이 터지듯 내가 있는 공간에 가득 차 나를 숨 못 쉬게 압박해오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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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식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의 저자이자 모던 락밴드 '디어클라우드'의 베이시스트인 임이랑이 이번엔 불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신에 삶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 불안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휴전상태에 접어든 내게, 이 책은 '당신도 고독한 싸움을 하느라 고생 많았다'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불안을 부인하고 외면하려고 발버둥 치던 초반과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깨쳐가는 지금이 서로 닮아 있어 책을 얼마나 꼭 쥐고 한 문장씩 소화하듯 읽어내려갔는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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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는 바닥을 치고 올라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알몸 같은 내면의 문장들이 모여 너무 진해서 심연 같은 글들로 완성되어 갔다. 불안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은 농축하고 농축해서 바닥에 눌러붙을만큼 진득해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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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이랑의 말처럼 '불안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아이'와 같다는 말에 마음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키가 작고 조심스러운 아이, 그렇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때면 한없이 사나워지는 아이. (13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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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그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
새로운 삶의 모습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
그녀 역시,⠀
'오늘은 불안을 데리고 있어야 하니 음악을 들을 수 없어.'⠀
'불안을 안심시켜야 하니 커피를 그만 마시는 게 좋겠어.'⠀
'불안과 함께하는 중이니 공포영화는 다음에 봐야겠어.'⠀
'불안을 재워야 할 시간이니 편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좋겠어.'라며 ⠀
불안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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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은 느긋한 사람보다 문제 해결이 빠르고 항상 새로운 걸 지향하며 깊이 파고드는 중독성이 있어 다른 사람보다 성공 확률이 높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불안하다는 건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마치 성격과 같이 나의 특징 중 하나라 생각하고 내 삶의 한 곁에 두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면, 저자의 말처럼 불안이, 그 예민하고 날선 감각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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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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