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혼 을유세계문학전집 37
니콜라이 고골 지음, 이경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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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얘기했듯이, 러시아 문학은 등장인물의 길고 어려운 이름의 산을 넘으면 반은 읽은 거나 다름없다. 난해할 것 같다는 선입견과 달리, 러시아 문학은 초반엔 험하지만 중반 이후론 완만하게 이어져 정상 등반이 무난한 산山​과 같다. 고골의 장편 소설 『죽은 혼』 역시, 제목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분위기와 어려운 이름 탓에 진도가 안 나가던 처음을 겪어내니 그 뒤론 궁금증과 몰입감으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니콜라이 고골의 『죽은 혼』의 시대 배경은 농노제를 기반으로 하는 19세기의 러시아이다. 주인공 '파벨 이바노비치 치치코프'는 여러 도시들을 다니면서 농노를 많이 거느린 지주들을 찾아다닌다. 그가 왜 지주들을 만나려 애를 쓰는지 독자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치치코프가 '죽은 농노를 사고 싶다'라고 지주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대목에서부터 독자는 그의 의도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황당함과 의아함이 섞인 물음표를 지닌 채로 페이지를 내달리게 된다.



치치코프가 사고자 하는 죽은 농노들은 사실은 사망하였지만, 7년에서 10년 주기로 시행하는 인구 조사 전까지는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국가에 인두세까지 내야 한다. 그럼에도 치치코프는 '죽은 혼'들을 사 모으는 데 매우 집착한다. 죽은 농노를 사고파는데도 치치코프와 지주들 간에 치열한 심리전과 흥정이 오고 가는 게 우습게 느껴진다.



고골은 주인공이 죽은 혼을 사들인다는 설정을 작품 속에 깊이 심음으로써,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던 죽은 뿌리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게 하는 효과를 얻는다. 치치코프가 만나는 지주들은 하나같이 비인간적, 탐욕적, 위선적이며, 죽은 농노인지도 모르고 오히려 주인공을 도와주는 관료들은 무능력의 극치인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덮으려 했던 농노들의 미심쩍은 죽음까지도 드러난다. 고골이 심어 놓은 이런 영리한 장치 덕분에 강도 높은 체제와 사회 비판이 소설 속에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스토리로써 풀려나간다.



니콜라이 고골의 『죽은 혼』을 읽으며 소설 속의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보이는 건 나뿐일까. 소설 속의 코페이킨이란 상이군인의 이야기는 특히나 그렇다. 단지 국가의 필요에 의해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고는 목숨을 바쳐 싸운 국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관리와 국가의 토사구팽적 태도가 지금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모순을 그린 이 소설을 21세기를 사는 지금 우리가 읽어도 시간의 간극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고골의 풍자는 여전히 유효하다.


____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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