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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 머시기 - 이어령의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
이어령 지음 / 김영사 / 2022년 4월
평점 :
이 책은 이어령의 '말과 글 그리고 책'에 대한 '여덟 번의 강연과 대담'을 모아 놓은 책이다. 시간과 장소, 주제도 다른 이야기라 서로 독립된 듯하지만 '언어'라는 큰 테두리로 묶여 우리가 쉽게 말하고 쓰는 언어 생활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그의 사유는 너무나 깊고 넓으며, 생각의 속도는 새처럼 날쌔서 따라잡기가 힘들 때가 많았다. 몇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정보 습득의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 자주 들었다. 독자의 읽기를 자꾸 중단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말에 따르면 독자의 매끄러운 독서를 방해하는 이 책은, 80년의 그의 인생에서 건져올린 값진 배움을 기꺼이 내어주는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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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은 '사고는 언어에 갇힌다'고 말한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대박'이란 말 속엔 '감탄과 놀람의 다양하고 세밀한 감정들'이 갇혀있다. 화나고 답답한 감정 역시 '짜증나'라는 말로 다 포장되어 버린다. 그는 우리가 언어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뒤쫒지 말고 나만의 언어를 사용해야만 그것을 기반하여 창조적 생각이 움틀거라고 말이다. 절절이 맞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에서 불평등한 양가 호칭을 새롭게 정리해 발표한 것을 보고 '사고가 언어에 갇힌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한 적이 있었다. '시댁媤宅'에 비해 낮춤말이었던 '처가妻家'를 '처댁妻宅'으로 같이 높이거나 또는 둘을 함께 낮춰 '시가媤家', '처가妻家'로 통일해 부르자고 제안한 것이다. 또한 아버지 쪽은 '친할 친(親)'을 붙여 친가親家, 어머니 쪽은 '바깥 외(外)'를 붙여 외가外家로 불렀던 것을 아버지 본가, 어머니 본가로 풀어 사용할 것을 권했다.
양가 호칭에 짙게 어려있던 불평등이 새로운 언어에 조금씩 옅어짐을 느꼈다. 언어는 사고를 자유롭게 해주고 인식을 바꿔주기도 하는 것이다. 줄임말로 끊겨 버리는 세대 간의 소통, 외국어에 잠식된 소중한 옛말들... 무분별하게 사용했던 언어로 잃었던 감정과 소통,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이어령은 다시 되찾아 책 속에 풀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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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면서도, '독서를 꾸준히 하면 과연 사유의 폭과 깊이를 향상시킬 수 있을까?'하는 작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문장이 그저 나를 스치듯 지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서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어령의 책을 읽으면 그런 내 불안감을 잠재워주고 독서에 대한 명확한 확신을 주어 나를 다시 책의 길로 강하게 잡아끌어준다.
그의 글은 작은 종이에 빼곡히 갇혀 있지만 그 안에서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자유롭다. 생각과 해방, 표현의 자유를 이룬 그의 글들은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며 순간순간 모양을 바꿀 수 있는 홀로그램 같았다. 막히지 않는 생각의 해방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느낌은 어떨까 궁금했다. 마스터키를 들고 닫힌 문을 모두 열어젖히는 희열감일까. 이어령을 통해 언어의 힘을 느낀다. 그의 바람대로 그가 '시작한 곳'이 아닌 '끝내놓은 자리'에서 우리가 일어설 수 있도록 항상 깨어있는 언어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