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듣는 시간 -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다큐멘터리 피디의 독서 에세이
김현우 지음 / 반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에 '다큐멘터리 피디의 독서 에세이'라고 쓰여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나에게 '존 버거 소설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로 기억되어 있었다. 존 버거의 소설들을 워낙 좋아했기에, 번역가의 독서 취향을 알려주는 책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 피디로서의 경험과 그 경험에 부합하는 13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두 가지 물감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 낸 것처럼 서로 잘 녹아들어 있었다.

'타인을 듣는 시간'
'보는 것(seeing)'이 아닌 '듣는 시간(listening)'이라 제목 지어짐은 아마 보는 건 수동적이지만, 듣는 일은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해야 하기에, 그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읽는 것도, 다큐멘터리 피디라는 직업 모두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많이 닮아 있었다.

'책으로, 또 현실의 삶에서 타인을 끊임없이 만나는 삶이란 어떨까?'

그건 아마 나 자신과 부딪히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 어쩌면 선입견, 편견 등이 매번 노출되어 부딪혀 깨지는 일. 정신적으로 굉장히 고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말하는 '이해'의 의미에서, 그간 타인을 들으면서 살아왔던 저자의 삶의 이력이 그대로 보이는 듯했다.

___139페이지
이해란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몸으로 하는 것이다. 때로 그렇게 자리를 이동하고 나면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위험한 행동이기도 하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채,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남발하는 이해가,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전하는 이야기나 행동이 공허한 이유다. 그때 채워지는 것은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사람의 자기만족밖에 없다. 만족스러울지 모르겠으나 외롭기도 한 마음일 것이다.

이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한참 생각하게 했다.
나는 그동안 이해란 단어를 얼마나 낭비하며 살아왔던가. 부끄러웠다.

듣는 건 재능이고, 듣는 건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귀를 연다고 듣는 건 아니었다. 그건 들리는 것이었다.

듣는다는 건 이해를 동반한 작업이고 내가 있던 자리를 내놓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타인을 듣는 시간은 내면의 쉼 없는 '판단의 소리'를 멈춘 고요의 시간이다. '이런 시간들이 쌓였을 때의 나'는 예전의 나일 수 없다.

이 책은 빨리 볼 수 있는 책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 만큼 빨리 잊히는 책도 '절대' 아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