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된 일라이저 액턴의 맛있는 인생
애너벨 앱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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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사람들이 소설이나 시처럼 즐거움을 얻으려고 요리책을 읽을 날을 꿈꿔. 그게 상상이 되니?"
- p.348 일라이저 액턴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은 초기 영국 요리책의 저자였던 일라이저 액턴과 조수인 앤 커비의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적 요소가 가미된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요리책'이라는 장르의 탄생기라고나 할까. 단순한 재료 소개에 요리 방법만 나열한 책이 아닌 애정이 담긴 요리에 영혼을 가득 담아 그림 그리듯 묘사하는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요리책 말이다.

여성들은 모름지기 조신한 '숙녀'로서 기대되는 역할이 있던 시절, 진취적이고 글을 쓰는 '노처녀' 일라이저 액턴이 있다. 어느 날 시 대신 당시에는 하찮은 취급을 당하던 요리책을 써오라는 출판사 제안에 자존심 상했던 그는 갑자기 기울어버린 가세로 생계 유지를 위해 하숙집을 운영하게 되면서 짐을 싸다가 당시 요리책들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된다.

한편, 요리에 관심이 많고 보다 나은 삶을 꿈꾸지만 가난과 돌봐야 할 가족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던 앤 커비. 어느 날 목사의 소개로 가정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곳이 일라이저의 하숙집이었다. 이렇게 일라이저 액턴과 앤 커비는 운명의 만남을 하게 되고 하숙집 주방에서 주인과 하녀로서 요리를 하고 생각을 나누며 인생을 배워 나간다.

책의 초반부에는 생소한 식재료와 맛을 상상할 수 없는 그 시절 영국, 프랑스 요리(미스 일라이저가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익힌)의 묘사를 보면서 빠져들었다. 이 책을 기반으로 TV 드라마도 제작된다고 하니 어떤 그림이 나올까 상상도 하고 이렇게 섬세하게 글로 묘사한 요리 과정이 과연 영상에 잘 녹아들지 우려도 하면서 말이다.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이 작품은 요리 이상의 스토리를 담고 있음을 생각케한다. 일라이저와 앤에게 '주방'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 일라이저가 그토록 쓰고 싶어하는 '글쓰기'(시, 희곡)는 또 어떤 의미일까?

"시구를 창작하는 것과 요리를 창작하는 게 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정 살아 있는 느낌, 온전히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는 순간에만 내가 존재하는 게 똑같다. 요리를 준비하거나 레시피를 쓰느라 완전한 문장을 구사해야 될 때가 그렇다."

일라이저에는 무엇인가를 잃으면 대신 푹 빠져들어 공허함을 잊게 할 몰입의 대상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피에르와 수재너를 대신해 시를 쓰고, 달라진 지위로 인한 상실감을 채워줄 요리를 하며 자신의 손을 떠난 것들을 잊어버리려고 말이다. 그녀에게 시와 요리는 구제와 독립의 매체이고 탈출의 수단이었다.

앤에게 주방은 기회의 공간이자 해방처였다. 가난과 술 취한 아버지, 정신병원에 보내진 어머니로부터 벗어나 숨쉴 수 있는 곳. 그 좋아하는 요리를 맘껏 해볼 수 있는 곳. 그리고 바깥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우리' 요리책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10년에 걸친 요리책 집필기 같지만 그 이상의 깊은 이야기가 담긴 두 여성 주인공의 고군분투 성장 스토리를 읽어보길 바란다.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직접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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