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위어 가는 책
소희림 지음 / 좋은땅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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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는 감이 안 왔다.

표지에는 촉수를 뻗은 책이 다른 책을 감싸고 있었다.

무서운 건지 신기한 건지.


'모두를 위한' '짧은 동화 37편'이란 말에 

부담 없이 집어 들었다.

예상의 80%는 맞았고, 나머지 20%는 의외였다.


이 책은 아이와 어른이 다른 온도로 읽히는 책이다.

같은 장면을 아이는 한 층으로 읽고,

어른은 두 층으로 읽는다.

아이는 그냥 통과할 장면을, 어른은 한 번 걸리도록

설계한 책이다.


표제작 「여위어 가는 책」은

하루라도 읽어주지 않으면 책이 말라버린다는 이야기다.

책을 싫어하는 레오는 마지못해 펼쳤지만

결국 끝까지 읽게 된다.

아이한테는 그게 더 잘 통했다.


하루라도 읽어 주지 않으면 살짝 마르고,

다 읽으면 다시 살아난단다' p.10

이 책에서 가장 동화다운 건

「움직임 마을, 이름 마을」편이었다.

'동사'들이 사는 움직임 마을과

'명사'들이 사는 이름 마을.

문장인데도 시처럼 읽히고, 발상도 신선했다.




아이한테는 국어 시간에 배운 것들이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

어른한테는 함께라야 완성되는 이야기였다.


「맛있는 빵과 국」은 달랐다.

의사 상원에게 고급 레스토랑의 필레미뇽과 휘낭시에는 

그냥 맛있는 고기와 빵일 뿐이었다.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것들,

안 먹어보면 대화에 낄 수 없는 것들.

나도 그런 데 휘둘린 적이 있다.

그래서 상원의 마지막 말이 깊게 와닿았다.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로 p.255



트럭도 돼지도 웃고 있다.

의외였던 건 이 장면이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어른만 그 웃음이 다르게 보인다.

아이들은 이걸 어떻게 읽을까.

아이들 눈에는 그냥 귀여운 그림일 것이다.


어른이 항상 더 잘 읽는 건 아니다.

단지 어른은 결말을 알고 읽는다.

홍시가 고양이한테 먹히는 장면이 무섭고,

도살장으로 가는 트럭이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은

슬프다.


근데 아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홍시는 씨앗이 되고, 트럭은 친구가 생긴다.

무서운 건 결말을 알아서가 아니라,

결말만 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낡은 인공지능 스피커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목적지 도착'

어른은 그게 죽음인 걸 안다.

하지만 아이는 그냥 도착한 거다.


아이는 한 번 읽고, 어른은 한 번 더 읽게 된다.

읽다 보면 20년 넘게 아이들 곁에 있던 사람이 쓴

책이라는 게 느껴진다.

초등 저학년도 읽기에 무리가 없고,

같이 읽으면 더 좋은 책이다.



ⓒ 다락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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