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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ㅣ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평점 :
나도 경북 청도라는 시골에서 자랐다.
국민학교 시절, 우리 마을에는 잘사는 친구 우현이가 있었다. 우현이는 4학년때 대구로 전학을 갔다. 아니 '유학'을 갔다. 집이 넉넉한 친구들은 선택지가 많았다. 말 그대로 세상이 넓었다. 친척 형인 경호 형, 성호 형도 국민학교 때 대구로 ‘유학’을 갔다.
그 말이 그때는 참 멋있게 들렸다. 도시로 떠난다는 건 공부를 더
잘하겠다는 결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여기 말고 다른
세계가 있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했다. 엄마에게 '나도 대구가면 안돼'라고 물었을 때 엄마의 그 난처한 눈빛을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배웠다.
나이가 들면 다 똑같다, 그런 말로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의 고민은 시골에 있어도 도시에서 살아도 결국 비슷할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불안은 오고, 비교는 따라오고, 마음은 흔들린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때의 청도는, 내게 너무 답답한 곳이었다.
내가 보는 하늘이 좁고, 내가 서 있는 땅이 작아서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너무 적어서 숨이 턱 막혔다. “여기서의 삶”이 이미 결정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답답함을 견디게 해준 건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다.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그들을 붙잡고 버틴 나 자신이었다. 도망칠 능력이 없어서 버틴 건지, 버텨서 살아남은 건지, 이제 와서는 구분이 잘 안 된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시간은 나를
약하게 만들기만 한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유자는 없어』 이 책을 읽으며 그 오래된 답답함을 다시 떠올렸다. 거제라는
섬, 그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친구들, 떠나지 못하는 마음, 혹은 떠나는 것이 두려운 마음. 내가 사는 이곳이 누군가에겐 안식처일
수 있지만 내게는 한정된 선택지일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소설 속 청소년의 고민이 아니라, 지방에서 자랐던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삼켰던 질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내 딸들도 언젠가 비슷한 답답함을 느낄지 모른다. 시골
청도가 아니라 지금 사는 대구에서 말이다. 대한민국의 중심은 언제나 서울이고, 수험생과 취업 준비생의 목표는 결국 ‘in서울’이라는 말로 통하는 시대다. 삶의 무게는 지역마다 다르고, 선택지는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흔들리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 유자(유지안)가
흔들릴 때 곁을 지켜준 가족과 친구들처럼, 나도 내 딸이 흔들릴 때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빠’라는 이름이 아닌, 그보다 먼저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정답을 주는 어른이 아니라, 흔들리는 시간을 “함께 건너가 줄 사람”일지도 모른다.
『유자는 없어』는 그런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