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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없다 - 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
정혜승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0월
평점 :
"엑스포 유치를 총지휘하고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우리 부산 시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 여러분께 실망시켜 드린 것에 대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윤석열이 사과를 했다. 난 깜짝 놀랐다. 대선후보 시절 개에게 ‘사과(Apple)’를 주는 사진을 본인의 SNS에 올리며 국민들을 조롱했던 그가 TV에 나와서 '사과(謝過)'를 한 것이다. 그것도 비통한 표정으로…
159명이 죽은 이태원 참사 당시 윤석열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슬픔을 가누기 어렵다"라고 말하거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말했으나 직접적인 대국민 사과는 없었다.
14명이 죽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도 윤석열은 사과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서울로 간다 해도 그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하며 해외순방을 계속했다. 해외순방을 마치고 나서도 당연히 대국민 사과는 없었다.
그런데 엑스포 유치를 실패하고 난 뒤에는 곧바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모든 것이 윤석열 본인의 부족이란다. 윤석열의 머리와 심장에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것보다 엑스포 유치 실패가 훨씬 더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는 의미이다.
<정부가 없다>
이 책의 부제는 “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는 하나의 사례일 뿐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대한민국 정부는 사라졌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정부가 없어지고 난 뒤 나타난 말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이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살기를 도모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정부가 더 이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국가 시스템에서 안전 문제나 재난 등의 상황은 리더의 관심사에 따라 바뀌고 공무원들도 그에 따라 바뀌는 법이다. 코로나 시대에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된 방역시스템을 윤석열은 ‘정치 방역’이라고 규정지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고생했던 수많은 공무원과 의료 인력들은 모두 ‘정치 행위’에 동원된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 책에 나오는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의 말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다.
"대통령제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허구입니다. 좌파든 우파든, 정권을 잡는 순간부터 공무원을 도구로 쓰려고 합니다. 다음 선거에 다시 당선되어야 하니까요. 그나마 순수했던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죠. 저는 정치인들이 그래서 싫어요. 문 전 대통령은 위선적이라 싫었고, 윤 대통령은 무식해서 싫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래도 관록이 있었죠, 박근혜 정부에선 좌파 우파 없이 다 쫓겨나기도 했고요. 우리나라 공무원 행정의 가장 근본적 모순이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정치입니다."
윤석열의 정치라고 부르기 어려운 비열하고 비인간적인 정치놀음은 공무원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정부의 기본 책무는 대통령의 관심사가 아니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정부가 없고, 리더의 사과가 없고, 민족의 자존심이 없어지고, 한반도의 평화가 없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없고, 법이 없어졌다.
오늘이 지나 내일이 되면 대한민국에서는 또 어떤 것이 없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