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적이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종묘와 사직단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도성이 포위되면 서울을 버릴 수 없을 것이고, 서울로 다시돌아올 일은 아예 없을 터였다. 파주를 막아낼 수 있다면 서울로돌아오기 위해 서울을 버려야 할 일이 없을 터이지만, 그 말이옳은지 아닌지를 물을 수 없는 까닭은 적들이 이미 임진강을 건녔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앞을 막아선 채 죽어서 그 충절을 후세에 전하리라는 말은 우뚝하였으나 적들은 이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그 말의 크기와 높이는 보이지 않았다.
서안 너머 방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임금은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가야겠구나. 가자.
삼정승, 육판서, 비국당상들이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며 흐느꼈다.